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일대에는 '파파'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보라색 승합차 10대가 나타났다. 이날 승차 공유 스타트업 큐브카가 시범 운영을 시작한 승합차 호출 서비스용 차량이다. 고객이 파파 앱(응용 프로그램)에 도착지를 입력해 차량을 부르면 운전기사가 딸린 11인승 승합차가 고객이 있는 위치로 찾아온다. 큐브카에 앞서 사업을 시작한 쏘카 자회사 VCNC의 승합차 공유 서비스 '타다'에서 차량 색깔만 바뀌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서비스다. 이들은 모두 승합차를 이용한 일종의 유사 콜택시인 셈이다.

택시 업계가 "타다 서비스는 불법"이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타다와 유사한 차량 제공 서비스가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카풀(자가용을 이용한 승차 공유)이 사실상 택시 업계의 반대와 각종 규제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고, '타다 모델'만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사업이 가능한 승차 공유 모델이기 때문이다. 국내 법률에 따르면 택시와 같이 면허를 받지 않은 차량은 돈을 받고 승객을 태우는 행위가 불법이다. 하지만 타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의 예외 조항을 활용한다. '승차 정원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인 승합차에는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용자가 차량을 부르면 11인승 이상의 승합차를 임대해주는 동시에 운전기사도 함께 보내는 식이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이런 타다 모델이 합법인지 여부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타다에 대한 공식적인 유권 해석을 내놓은 적이 없다"며 "현재 택시 업체가 타다를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에 합법 여부는 사법부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승차 공유 업계에서 '사실상 묵인'이란 신호로 여겨지면서 파파와 같이 '타다 모델 따라 하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큐브카 관계자는 "타다 모델에 택시 업계의 반발이 있다는 건 알지만 당장 법적 규제를 피해 사업을 펼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의 회색 지대에서 늘어나는 '타다 아류(亞流)'

지난해 승용차를 이용한 승차 공유 서비스를 출시했다가 국토부로부터 불법 사업 딱지를 받은 스타트업 차차크리에이션은 올 7월에 11인승 승합차를 이용한 승차 공유 서비스 '차차 밴'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인이 렌터카 업체에서 승합차를 장기 대여받은 뒤 대리 운전자로 등록하고 차차 앱을 통해서 콜을 받는 식이다. 차를 대여받은 사람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영업하지만 서류상으로는 '승합렌터카에 대리기사를 알선한 것'으로 기록된다. 장기 렌터 차량을 빌린 운전기사가 호출을 받으면 장기 렌털 이용 계약이 잠시 해지되고 호출자와 차량 사이에 단기 렌털 계약이 체결된다. 차차크리에이션 관계자는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택했다"면서 "7월에 차량 100대로 운영을 시작하고, 4개월 안에 1000대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벅시는 3년 전부터 이런 형태의 승합차 승차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11~15인승 승합차를 써서 서울·수도권 도심과 공항 사이를 이동하는 고객에게 운전자를 알선하는 것이다. 100% 예약제로 운영한다.

지난해 12월 이용자가 50만 명을 돌파했다. 벅시는 올해 사용자가 21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업체는 현재 정부에 '6~10인승 승합차로도 이런 승차 공유 서비스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카풀 사업을 접은 카카오모빌리티 역시 승합차를 이용한 서비스를 고려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택시 업계와 손을 잡고 11인승 이상 승합차 택시를 도입할 계획이다.

규제 때문에 생겨난 '한국형 승차 공유'

승차 공유 업계 측은 "타다가 인기를 얻은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혁신적인 이동 수단이 절실하다는 뜻"이라며 "해외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은 우버와 같은 차량 공유가 불가능하다 보니 이렇게 승합차를 이용한 기형적인 서비스가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승합차 공유 업체 관계자는 "솔직히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쥐어짜는 서비스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똑같은 승차 공유 모델인데 승용차는 불법이고, 11인승 이상의 승합차는 합법인 것 자체가 황당하다는 것이다. 승합차는 구매 비용과 기름 값이 승용차보다 훨씬 비싸, 자신들도 사업을 확장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라는 불만도 있다. 승합차 공유 모델로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타다도 여전히 적자다.

정부가 이 같은 '회색 지대'에 대해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택시 업계는 타다 모델이 "관광산업을 고려해 만든 법을 악용하면서 택시의 밥그릇을 뺏는다"며 "단체 관광객이 아닌 개별 승객을 승합차로 태우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타다 측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서 사업 허가를 받고 운영하고 있는 사업이 어떻게 불법이냐"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