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오덴세에 있는 세계 최대 코봇(cobot) 회사 '유니버설 로봇' 본사. 기자가 코봇 팔을 탁자 끝에서 반대편 끝으로 움직이고, 바로 옆 화면에 있는 '정보 입력'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후 코봇은 기자가 설정한 동선대로 반복적으로 움직이면서 정해 놓은 1분 간격으로 플라스틱 컵을 날랐다. 그 컵에 기자는 다양한 음료를 섞은 칵테일을 따라 직원들에게 대접할 수 있었다. 만약 바(bar)였다면, 술잔을 씻고 배열하는 일은 코봇, 화려한 쇼와 함께 칵테일을 만드는 일은 바텐더가 하는 식이다. 로봇이 발달한다면, 화려한 쇼까지 흉내 내는 '칵테일 로봇'이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덴마크의 코봇 산업은 다른 철학으로 미래를 본다.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로봇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옆에서 단순 반복적이고 위험한 일을 대체하는 역할에 한정한다. 로봇의 효용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대신 인간과 로봇의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유니버설 로봇의 요르겐 본 홀렌 사장은 "사람과 로봇의 서로 다른 장점을 결합하면, 1+1=3이 되는 것"이라며 "인간과 로봇 관계를 뺄셈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한 식당에서 유니버설 로봇이 만든 코봇이 요리사들과 함께 음식 재료를 다듬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용 로봇의 용도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고, 빠른 속도로 작업하는 것이다. 안전을 위해 인간의 접근을 금지한다. 반면 로봇 팔 형태의 코봇은 말 그대로 인간과의 공존이 목적이다. 인간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며, 로봇 팔이 들어올릴 수 있는 최대 무게도 현재 10㎏이다. 전통적인 산업용 로봇의 최대 생산국은 중국이지만, 코봇은 덴마크가 이끈다. 유니버설 로봇이 전체 코봇 시장의 60%를 차지한다.

◇쉽고 값싼 로봇… "누구나 쓴다"

집게 손만 바꿔 끼면… - 코봇의 로봇 팔에 달린 집게 손을 바꿔 끼면 머리를 빗는 일(위)과 마사지도 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는 올해 처음 유니버설 로봇의 코봇이 일하는 피자집이 문을 연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뽑고, 유명 요리사의 조리법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기술도 개발돼 있다. 하지만 매장에서 다양한 원두를 섞어 손님에게 맞는 커피를 권유하고, 손님 기호를 반영해 색다른 요리법을 적용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코봇의 장점은 사용하기 쉽고,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로봇 팔 끝에 달린 집게만 바꾸면, 요리 로봇이 마사지 로봇으로 변신한다. 홀렌 사장은 "레고 블록처럼 원하는 대로 코봇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며 "코봇 산업을 '레고의 나라' 덴마크가 이끄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격도 한 대당 2000만~4000만원 정도로 수억원씩 하는 일반 산업용 로봇보다 저렴하다. 덴마크남부대학(SDU) 로봇연구소(머스크 맥키니 몰러 연구소)의 할렌보르그 소장은 "거대 공장에 있는 산업용 로봇이 수퍼 컴퓨터라면, 코봇은 PC(개인용 컴퓨터)나 노트북 같은 것"이라며 "미래 생산 공장은 첨단 산업 로봇이 차지하겠지만, 일상을 바꾸는 것은 코봇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현장도 바꾸는 코봇

코봇은 산업 현장도 변화시키고 있다. 전통적 산업용 로봇은 자동차 같은 거대 공장에 들어간다. 하지만 코봇은 저렴하고 쓰기 쉬워 중소기업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코봇의 손 역할을 하는 각종 집게(gripper)를 만드는 '온로봇(Onro bot)' 본사. 두 손가락 모양 집게 손으로 네모난 플라스틱 부품을 나르던 코봇 앞에 커다란 유리판이 놓였다. 집게 손 대신 진공 흡입판이 달린 집게를 달았다. 그러자 코봇이 이전보다 속도를 늦춰 조심스럽게 유리판을 들어 올렸다. 이 회사 판매 책임자 토마스씨는 "휴대전화 케이스 조립 작업에 투입되던 코봇이 1분 만에 액정 조립 작업용 로봇으로 변신한 것"이라며 "중소 협력업체들에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미르(MiR)는 카메라와 센서를 장착해 작은 창고와 사람이 많은 병원 등에서 코봇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로봇'을 만든다.

코봇은 인공지능(AI)까지 장착한 거대한 최신 산업용 로봇에 비하면 단순하다. 하지만 미래 일상을 바꾸는 파괴력은 작지 않다. 성장세도 전통적인 사업용 로봇보다 빠르다. 시장 조사기관 '루프벤처스'에 따르면, 작년 144억달러(약 16조원)였던 전 세계 전통 산업용 로봇 시장은 2025년 246억달러로 70% 성장할 전망이다. 반면 코봇은 같은 기간 14억달러에서 92억달러로 6.5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코봇(cobot)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로봇으로 협동 로봇(collaborative robot)이라고도 불린다. 인간의 팔처럼 생겨 움직이는 속도가 빠르지 않고, 사람과 닿으면 멈추기 때문에 안전하다. 사람의 접근이 금지된 공간에서 움직이는 전통적인 산업용 로봇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