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지중화에 750억 대기로
송전탑 설치를 둘러싸고 2014년부터 5년을 끌어오던 한국전력과 안성시민의 갈등이 일단 미봉되는 모양새다. 당장 2023년 경기 평택 고덕 반도체 3공장 가동을 앞둔 삼성전자가 한전을 대신해 관련 비용을 대기로 했다. 그동안 한전과 안성시민들은 ‘서안성~고덕 송전선로 건설’을 두고 지중화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는데, 문제가 된 산간지역 1.5km 구간을 당장 전력이 필요한 삼성전자가 수백억원을 들여 지중화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 반도체 1공장을 가동 중이며 2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공장까지는 기존에 당진에서 끌어오던 전력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추후 건설될 3·4공장을 대비해 안정적 전력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11일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경기 안성)과 한전,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경기 안성시 원곡면 주민으로 구성된 원곡면 송전선로반대대책위원회와 안성시, 한국전력, 삼성전자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송전선로 건설 관련 양해각서(MOU)를 맺을 예정이다. 현재 당사자들은 MOU에 담길 문구를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큰 틀의 합의안에 따르면, 한전과 삼성은 "송전선로를 땅에 묻는 지중화 구간을 확대해 달라"는 주민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주거지역을 포함한 산간지역 1.5㎞ 구간에 송전선을 묻기로 했다. 전체 송전선로 건설 비용 중 이번 갈등의 핵심 쟁점이었던 이 구간 지중화 건설에 대해서는 비용 약 750억원을 삼성전자가 부담하기로 했다.
한전은 중재안에 따라 2023년 2월까지 1.5㎞에 송전탑을 세워 전력을 송출하고, 2025년 12월까지 이 구간에 지하터널을 뚫어 선로를 지중화하고, 기존 송전탑은 철거하기로 했다.
2014년부터 한전과 삼성전자는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력 공급원 다변화를 위해 안성에서 추가로 전력을 끌어오려 했으나 지역 주민 반발에 봉착했다. 서안성~고덕 송전선로를 깔면, 공장 증설에 대한 세수 혜택은 평택이 보고 재산권·건강권 피해는 안성이 뒤집어쓰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안성시 측은 송전탑 건립 대가로 "송탄 상수원 보호구역을 해제해달라" "삼성전자 일부 협력사를 안성시에 입주시켜달라" 요구해 왔는데 환경부와 평택 주민들 반발로 무산됐다.
이번 봉합은 지난해 11월 지역구 의원이 갈등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중재에 나서면서 본격화한 것이다. 다만 산간지역 1.5㎞에 2년 수명의 송전탑을 건설하기로 하고 그 비용을 기업에 물린 것은 ‘사회적 갈등 해결’이 아니라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5년여간 당사자 갈등이 첨예하게 갈렸던 ‘전북 군산시 새만금 송전탑’ 사례와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당시 중재에 나섰던 장태동 전 국민권익위원회 고충민원특별조사팀장(고충민원 행정사)은 "공공 갈등은 당사자가 서로 각자 주장만 내세워 타협이 어려운 만큼 이해 관계가 없는 제3자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설득하고 합의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람이 없는 산간지역에 2년 수명의 송전탑을 수백억원 투입해 건설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새만금 송전탑은 2016년 말 지중화 없이 완공됐다.
SK하이닉스는 현재 1조6800억원을 투입해 자체 발전소를 직접 짓고 있다. 2022년까지 경기도 이천과 청주 공장에 각각 발전규모 570㎿(메가와트)인 발전소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소비하는 전력의 절반 정도 규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민들이 얽힌 갈등에 휘말릴 경우 어느 선까지 요구를 들어줄지 기업의 셈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차라리 자체적으로 전력을 대는 하이닉스의 사례가 나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