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대 기업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의 자리를 미국 인텔에 내줬다. 지난 2017년 2분기에 사상 처음으로 정상(頂上)에 오른 지 1년 반 만이다. 작년 4분기 '메모리 반도체 쇼크'의 여파로 실적이 하루아침에 급락한 탓이다.

31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작년 4분기 실적에 따르면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은 7조7700억원으로 이전 분기(13조6500억원) 대비 43% 폭락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매출도 24% 하락한 18조7500억원에 그쳤다. 앞서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인텔보다 2조원가량 낮은 매출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간으로는 매출 243조7700억원, 영업이익 58조8900억원의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갔지만 '반도체 쇼크'로 빛이 바랬다.

◇이 부회장 "비메모리, 미래 성장 동력 육성" 의지

실적의 급전직하는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의 변동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삼성이 40%대 점유율을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전체 530조(兆)원 규모의 세계 반도체 시장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최근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부침(浮沈)이 심하다. 반면 인텔은 나머지 3분의 2를 차지하는 비(非)메모리 시장의 강자(强者)다. 메모리 시장 변동에 영향을 안 받고 꾸준한 매출을 유지하며 다시 1위를 꿰찼다. 삼성은 이 같은 구조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주도로 비메모리 사업 집중 육성에 나섰다.

지난 30일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등 여당 의원들이 경기도 화성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을 때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의 어려운 상황 대신 미(未)개척 영역인 비메모리 반도체 공략에 대한 의지를 20여 분에 걸쳐 설명했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반도체 사업 총괄 김기남 부회장, 정은승 사장 등 반도체 분야 주요 경영진이 배석했다.

비메모리 사업은 전자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CPU(중앙처리장치), 통신·이미지센서 반도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등을 뜻한다. 미국 인텔·퀄컴을 비롯해 대만 TSMC, 일본 소니와 같은 업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미국(점유율 63%)이 가장 앞섰고 한국은 3.4%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4%)에도 뒤처져 있다. 업계에선 2022년까지 메모리 시장은 연평균 1%, 비메모리 시장은 5%씩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경영진은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며 "벤처기업들과 함께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나설 테니 많이 지켜봐 주시고 도와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간담회 시간이 부족해 구체적인 건의 사항은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메모리 성장 발목 잡는 '인력 부족·52시간제·R&D 투자'

비메모리 시장 공략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반도체 인력 부족'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비메모리 산업은 고급 두뇌가 꼭 필요하지만 국내 대학이 배출하는 반도체 박사 수는 매년 줄고 있다"며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인력도 매년 3000명이 필요한데 공급은 1000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도체가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임에도 지난 10년간 정부 R&D(연구개발) 예산이 2배 늘었을 때(10.8조→19.7조원) 반도체 R&D 예산은 63% 감소(0.1조→0.03조원)한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반도체 학계의 설명이다.

3개월 이상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반도체 업종의 특성으로 '최대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은 적기(適期) 공급이 가장 중요한데 현재 신제품 개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신규 인력을 많이 뽑아도 당장 반도체 고급 인력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

데이터 저장 용도로 활용되는 반도체로 D램과 낸드플래시로 나뉜다. 삼성전자가 두 분야 모두 40% 이상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장기 호황, 불황이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비(非)메모리 반도체

PC·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로 ‘시스템 반도체’라고도 불린다. 시장 규모는 메모리의 2배 수준. 고도의 기술력·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설계 능력이 요구되는 분야로 미국 기업들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