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IT(정보 기술) 전시회 CES 개막 하루 전인 7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현대차가 걸어다니는 자동차 '엘리베이트(Elevate)'의 시제품을 공개하자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기차로 바퀴에 다리가 달린 이 차는 평소엔 보통 자동차처럼 달리지만, 다리를 펴면 험한 지형이나 계단까지 오를 수 있는 '반(半)자동차, 반로봇'이다. 지진·붕괴 등 재난 현장에 접근해 구조대원·응급 환자를 실어 나를 수 있다. 이 차를 개발한 현대 크래들(실리콘밸리 소재 오픈이노베이션센터)의 존 서 상무는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1만여 명이 자연재해로 사망했다"며 "재난 현장에서 다리 달린 차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CES는 전자·통신 기업뿐 아니라 자동차 기업들의 기술 경연장이었다. 자율주행·모빌리티(이동성) 등 '이동의 편리와 자유'를 위한 신기술이 주요 화두였다.
◇현대차 "차 안 의자·팔걸이 위치 마음대로 바꾼다"
현대차는 이날 차 안의 의자나 팔걸이, 스크린 등 다양한 부품 배치를 고객이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는 '스타일 세트 프리(style set free)' 개념도 선보였다. 자율주행차는 운전자가 굳이 앞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운전석 방향을 뒤로 돌리거나 조수석을 왼쪽으로 90도 틀어 승객들이 서로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실내 구조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원홍 부사장은 "방 안 인테리어를 각자 스타일대로 꾸미듯, 차 안도 원하는 대로 구조를 변형시킬 수 있다"며 "2020년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생산되는 전기차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또 차량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실시간 교통 정보 등을 받을 수 있는 '커넥티드 카'를 2021년 전 세계 1000만대(누적 기준)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이날 고성능 수소전기차(FCEV)를 만들겠다는 비전도 밝혔다. 알버트 비어만 사장(연구개발담당)은 이날 "현대차가 아니라면 누가 고성능 수소전기차를 만들겠는가. 고성능 수소전기차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누군가 수소를 기반으로 한 고성능차를 만든다면 우리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콘티넨털 '배송 로봇 개', 도요타 '자율주행 실험차' 공개
이날 도요타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자율주행연구센터 TRI(도요타 리서치 인스티튜트)가 개발한 자율주행 실험차 'TRI-P4'를 공개했다. 길 프랫 TRI CEO는 미국에서 이 실험차로 자율주행 4단계(아주 드문 상황만 운전자 개입)뿐 아니라, 완전 자율주행인 5단계(운전대 없는 무인차)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TRI는 비밀 조직처럼 운영되고 있어 도요타의 자율주행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업계에선 구글의 웨이모가 자율주행 기술에서 가장 앞서고, 완성차 업체 중에선 벤츠·BMW·GM 정도가 앞서 있다고 평가한다. 길 프랫 CEO는 "웨이모의 연구 기간이 길고 축적된 기술을 가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 외 업체들과의 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주요 완성차 업체와 비슷한 수준에 다다랐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주요 글로벌 부품사들도 각종 신기술을 선보였다. 타이어 회사에서 글로벌 부품사로 변모한 독일의 콘티넨털은 자율주행차에서 내려 문 앞의 택배함에 물건을 넣어 주는 배송 로봇 개를 공개했다. 콘티넨털은 또 가로등이 도로나 주변 환경을 인지해 자율차에 정보를 전달해주는 지능형 가로등 개념도 공개했다. 글로벌 1위 자동차 부품사인 보쉬는 4·5단계 수준의 자율주행차인 무인 전기 셔틀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차량을 예약한 승객들을 최적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태우는 자율주행 셔틀은 불필요한 차량 통행을 감소시켜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보쉬는 다임러그룹과 손잡고 4·5단계 자율주행차 양산을 2020년 후반까지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