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출시된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의 인기가 심상찮다. 팰리세이드는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사전계약을 통해 8일만에 2만대 넘는 계약건수를 기록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팰리세이드의 등장으로 국내 SUV 시장의 판도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대형 SUV 시장을 주도해 온 쌍용자동차G4 렉스턴과 기아자동차모하비는 팰리세이드에 ‘왕좌’를 내줄 가능성이 크다.
또 팰리세이드가 대형 SUV로써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안전·편의사양을 대거 기본 적용하는 등 만만찮은 성능까지 갖춰 출시됨에 따라 수입 SUV와 중형 SUV 시장의 소비자들까지 흡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G4 렉스턴·모하비 타격 불가피…‘중형 강자’ 싼타페 수요도 흡수 가능성
지금껏 국내 대형 SUV 시장을 주도해 온 모델은 쌍용차 G4 렉스턴이었다. 올들어 11월까지 G4 렉스턴은 국내에서 전년대비 8.9% 증가한 1만5411대가 판매됐다. 기아차 모하비가 같은 기간 7220대가 판매되며 뒤를 이었다.
지난해 5월 출시된 G4 렉스턴이 최근 2년간 대형 SUV 판매량 1위를 기록한 것은 이렇다 할 경쟁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팰리세이드가 나오기 전 현대차의 대형 SUV로 판매됐던 맥스크루즈는 이미 2012년에 출시된 노후 모델이었고 모하비 역시 2008년 첫 선을 보인 후 한 차례 부분변경만을 거쳐 신차인 G4 렉스턴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팰리세이드가 내년까지 국내 SUV 시장에서 새로운 ‘독주 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굳이 ‘신차 효과’를 거론하지 않아도 G4 렉스턴, 모하비 등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데다, 준수한 성능까지 갖춰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팰리세이드의 전장은 4980mm, 전폭은 1975mm로 G4 렉스턴(전장 4850mm, 전폭 1960mm), 모하비(전장 4930mm, 1915mm)에 비해 크다. 특히 전고가 낮은 대신 앞, 뒷바퀴의 중앙을 연결하는 축거가 2900mm로 G4 렉스턴(2865mm), 모하비(2895mm)에 비해 길다.
G4 렉스턴과 모하비가 디젤 모델로만 판매되는데 비해 팰리세이드는 디젤 2.2 모델, 가솔린 3.8 모델의 2종으로 출시됐다. 팰리세이드 디젤 모델의 경우 연비는 리터당 12.6km로 리터당 10.1~10.5km인 G4 렉스턴, 9.6~10.1km 수준인 모하비를 앞선다.
다양한 안전·편의사양이 적용돼 있는 점도 팰리세이드가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로 꼽힌다. 팰리세이드는 ▲전방 충돌방지 보조 및 경고(FCA/FCW) ▲차로 이탈방지 보조 및 경고(LKA/LDW) ▲운전자 주의 경고(DAW) ▲하이빔 보조(HBA) 등 ‘핵심 첨단 지능형 주행안전 기술(ADAS)’을 전 모델에 기본 적용했다.
앞선 주행성능과 연비, 사양에 비해 가격은 오히려 경쟁 모델에 비해 저렴한 수준이다. 팰리세이드는 디젤 모델이 3622만원~4408만원, 가솔린 모델은 3475만원~4261만원에 각각 판매된다. G4 렉스턴의 경우 하위 트림은 3448만원으로 시작하지만, 최상위 ‘헤리티지’ 트림은 4605만원으로 팰리세이드보다 비싸다. 모하비는 4138만원~4805만원으로 판매돼 역시 팰리세이드에 비해 가격대가 높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출시된 팰리세이드가 중형 SUV 시장을 주도해 온 현대차 싼타페의 수요까지 흡수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싼타페 역시 가솔린, 디젤의 2가지 모델로 출시됐고 ADAS가 전 트림에 기본 적용되는 등 만만찮은 경쟁력을 갖췄지만, 팰리세이드와 가격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이다. 디젤 2.2 모델 기준으로 싼타페는 3348만원~4295만원에 판매돼 팰리세이드와의 가격 차이가 200만원을 밑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G4 렉스턴은 프레임바디 타입으로 설계됐다는 차별성이 있지만, 가격과 성능 측면에서 절대적 열위에 있어 팰리세이드 출시로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팰리세이드는 싼타페의 수요도 많이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대차는 ‘제 살 깎아먹기’를 최소화하고 중형 SUV 시장의 외부 수요를 최대한 끌어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익스플로러가 이끈 수입 SUV 시장도 영향 미칠 듯
전문가들은 팰리세이드 출시가 수입 SUV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 수입 SUV 시장은 포드 익스플로러가 이끌고 있다. 포드 익스플로러 2.3은 올들어 11월까지 국내 시장에서 5766대가 판매됐다. 같은 기간 익스플로러보다 많이 판매된 수입차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BMW 520d 등 볼륨모델로 꼽히는 중형 세단 뿐이었다.
팰리세이드 가솔린 3.8 모델의 최고출력은 295마력으로 익스플로러(294마력)와 큰 차이가 없다. 연비는 팰리세이드가 리터당 9.6km로 리터당 7.6km인 익스플로러를 앞선다.
가장 앞선 경쟁력은 역시 가격이다. 포드 익스플로러 2.3의 국내 판매 가격은 5460만원으로 팰리세이드 가솔린 3.8 모델의 최상위 트림보다 약 1200만원 비싸다.
최근 수입 대형 SUV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혼다 뉴 파일럿 역시 팰리세이드 출시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혼다 뉴 파일럿의 최고출력은 284마력, 최대토크는 36.2kg·m, 복합연비는 리터당 8.4km다. 가격은 5490만원~5950만원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북미 시장 등 해외에서도 팰리세이드에 대한 호평이 많다"며 "수입 대형 SUV 구매를 고려했던 소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팰리세이드로 눈길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