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의 주식거래 수수료 인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2009년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만 해도 0.144% 정도였던 평균 주식거래 수수료율은 지난해 9월말 기준 0.073%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공짜도 너무 많다. 지금 주식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어렵잖게 평생 동안 주식거래 수수료를 내지 않고 매매할 수 있을 것이다.
증권사들의 제살깎아먹기 경쟁은 왜 시작됐을까. 증권사들은 "주식 거래 수수료를 낮춰 고객을 늘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금융상품 판매를 확대하려고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데 이 설명이 사실일까.
처음 의도는 그랬을지언정,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대부업을 하려고 고객을 늘리는 느낌이다. 증권사들은 고객을 늘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신용융자 영업을 하면서 이익을 확대하고 있다. 증권사 신용융자 이자율은 연 6.4~10.2% 수준이다. 쉽게 얘기해 공짜로 매매할 수 있게 해준 대신 판돈을 빌려주며 돈을 번다는 의미다. 주식담보는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래도 반대매매 등 완충장치가 있어 일각에서는 증권사들이 ‘땅 짚고 고금리 장사를 한다’고 비난한다.
10월 무시무시한 급락장을 맞은 뒤 증권업계 분위기가 다시 한번 ‘쉬운 장사를 하자’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자기자본 투자를 했다가 큰 손해를 봤기 때문인지, 신용융자 장사나 하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증권사는 최근 신용융자 이자율을 슬그머니 0.3~1.1%포인트 올렸다. 비대면 이자율은 1.6%포인트까지 올리기도 했다.
각 증권사의 올해 실적을 봤더니, 모두 다 이자수익이 수탁수수료 수익보다 많았고 성장세도 가팔랐다. 한 증권사 추정치에 따르면, 키움증권만 해도 작년 2646억원이었던 이자수익이 3695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탁수수료는 1781억원에서 2332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증권사들이 왜 야생성을 잃고 있을까. 혹자는 대형 증권사가 은행 중심인 금융지주 계열로 재편됐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오랜 증시 부진으로 증권사들의 위험 회피 심리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자 장사가 증권사의 주력이 되어선 안된다. 그랬다가는 대부업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신용융자를 너무 확대하면 지난 10월과 같은 폭락장이 발생했을 때 개인 손해가 무지막지하게 커진다. 개인이 너무 큰 손해를 보면, 이들은 주식시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은 지난 2015년 8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추진을 묻는 기자들에게 "투자하는 회사에서 대출하는 회사로 바꾸고 싶지는 않다. 그랬다간 세상을 뜰 때 후회할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카카오뱅크 성공을 본 박 회장이 지금도 이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때의 자신만만했던 태도를 많은 증권사가 보여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