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이 천연 흡음재를 이용해 천적인 박쥐를 피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나왔다. 과학자들은 나방을 모방하면 가볍고 얇은 방음(防音) 신소재를 개발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영국 브리스틀대 마크 홀더라이드 교수 연구진은 지난 12일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황제산누에나방〈사진〉이 날개에 있는 비늘로 박쥐가 내는 초음파를 흡수해 위치가 노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쥐는 빛이 없는 밤에도 초음파를 내 먹잇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초음파가 나방에 부딪혔다가 나오는 반사파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방은 이에 맞서 박쥐의 초음파를 반사시키지 않고 아예 흡수해버리는 전략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나방의 날개에 있는 비늘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비늘은 마루와 골이 격자로 나 있는 구조였다. 연구진은 컴퓨터에서 비늘 구조를 3D(입체)로 재현하고 초음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했다. 비늘은 초음파를 받으면 진동을 했다. 소리굽쇠를 두드리면 따로 떨어져 있던 소리굽쇠도 같이 떨리는 것과 같다. 이를 통해 비늘은 초음파 에너지를 50%까지 흡수했다. 홀더라이드 교수팀은 앞으로 복수의 비늘이 동시에 초음파를 흡수하는 과정을 연구할 계획이다.
나방의 위장 무기는 또 있다. 연구진은 지난 6일 미국음향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황제산누에나방과 같은 과(科)에 속하는 프로메테우스누에나방과 마다가스카르과녁나방이 가슴에 있는 털을 이용해 박쥐가 내는 초음파를 흡수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연구진은 털들이 마치 구멍이 송송 뚫린 흡음재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나방과 나비는 모두 가슴에 굵은 털들이 빽빽하게 나 있지만 나방이 소리 에너지의 85%를 흡수하는 데 비해 나비는 20%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이는 나방의 가슴 털이 밤의 천적인 박쥐를 피하기 위한 목적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