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가 당초 예정대로 2020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미국‧그리스 등 일부 국가에서 경험축적기(EBP‧Experience Building Phase) 도입을 주장했다. 2020년 규제시행 이후 관련 실측데이터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필요시 협약을 개정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럽연합 등 다수 회원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내심 규제 연기를 기대한 해운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31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 22~2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IMO 7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arine Environment Protection Committee‧MEPC)에서 해양 환경 규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MEPC는 선박에 의한 해양오염 방지와 규제에 대한 문제를 심의하고 이와 관련한 국제협약 채택 및 개정을 결정하는 자리다.

MEPC는 2016년 10월에 열린 70차 모임에서 황산화물 배출 규제를 2020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따라 전 세계 모든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은 황산화물 배출량을 현행 3.5%에서 0.5% 이하로 낮춰야 한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IMO 본부

◇ 미국‧그리스 "필요시 협약 개정" 주장…EU 반대에 막혀

이번 MEPC에 참석한 한국선급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와 그리스 선주협회 등은 황 함유량 0.5% 이하 저유황유 사용에 따른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경험축적기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일부 편의치적국, 저개발국가에서 지지를 받았다. 편의치적국이란 자국민 소유나 자국 건조, 자국민 선원의 조건이 아니더라도 선주가 해당 국가에 선박을 등록하려고 할 때 이를 허용해주는 나라를 말한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을 포함한 IMO 회원국 대부분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결국 도입 합의가 무산됐다. 2020년 황산화물 규제 시행 이전까지 MEPC는 내년 5월에 한 차례 더 열린다. 한국선급은 차기 회의에서 경험축적기 도입과 무관하게 황산화물 규제는 시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오히려 이번 MEPC에서는 황산화물 규제를 강제할 수 있는 강력한 이행 협약이 채택됐다. 2020년 3월 1일부터는 황 함유율이 0.5% 이상인 연료유 운송을 금지하기로 했다. 오염물질저감장치(스크러버)를 설치하지 않은 선박이 황 함유율 0.5% 이상 연료유를 싣고 있을 경우 항만국 통제(PCS)에 따라 입항이 거절되거나 출항하지 못하고 억류될 수 있다.

2020년 규제 시행 연기에 기대를 걸었던 해운업계는 크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해운사는 2020년 황산화물 규제가 시행되기 전에 연료유의 황 함유율을 낮춰줄 수 있는 스크러버를 설치하거나 LNG(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쓰는 선박을 건조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스크러버 설치에는 10개월가량 소요된다. 결국 선사는 값비싼 저유황유를 쓸 수밖에 없다. 2020년 규제 시행으로 수요가 늘면 저유황유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만1000TEU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 중 세계 처음으로 스크러버를 장착한 현대상선 ‘HMM 프로미스’호

◇ 해양쓰레기, 온실가스 규제 본격 논의도 시작

이번 황산화물 규제는 시작에 불과하다. IMO는 황산화물 규제 뿐 아니라 해양쓰레기, 온실가스(GHG‧Greenhouse Gas) 등 각종 환경오염물질의 배출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IMO는 ‘런던협약‧의정서’ 당사국과 협의해 해양 쓰레기 배출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런던협약‧의정서는 폐기물이나 다른 물질의 투기를 규제하는 해양오염방지조약이다. 한국은 런던협약과 런던의정서에 각각 1993년, 2009년 가입했다.

황산화물 규제보다 강도가 높은 선박 온실가스 배출 규제도 준비 중이다. IMO는 지난 4월 72차 MEPC에서 국제연합(UN) 산하기구로서 파리협정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위한 초기전략을 채택했다. 이번 MEPC에서는 ‘선박 온실가스 감축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 프로그램과 이행 일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박한선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상안전연구실장은 "해운사는 황산화물 규제를 앞으로 어떻게 이행해야 할지 대책을 마련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며 "황산화물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규제에 대한 현황 파악과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