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LG전자·소니 등 한국과 일본의 TV 제조업체들이 중국 업체로부터 거꾸로 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3~4년 전만 해도 중국 업체들이 저가 공세와 함께 프리미엄 TV 시장까지 진출하면서 한·일 2강(强) 체제가 무너지리라는 우려가 팽배했던 것과 정반대 결과다.

올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QLED·OLED TV와 같은 차세대 TV 시장을 주도하며 중국 업체로부터 세계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오고 있다. 위 사진은 삼성전자가 작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선보인 차세대 QLED TV. 아래 사진은 LG전자가 작년 초 미국 IT 전시회 CES에서 216장의 OLED 패널로 만든 터널.

22일 TV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나란히 올 3분기에 TV 부문에서 10% 안팎의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의 비중)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3분기에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포함한 빅3가 2500달러(약 280만원) 이상 프리미엄 시장에서 점유율 90% 이상을 독식하면서 호조를 보였다는 것이다. 지난 2~3년간 삼성과 LG의 TV 부문은 세계 TV 시장의 성장 정체에다가 중국 업체의 가격 공세에 시달리면서 근근이 흑자를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삼성과 LG가 각각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TV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라는 차세대 기술을 앞세워 60인치 이상 초대형 TV 시장을 주도하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고위 관계자는 "1~2년 만에 교체하는 스마트폰과 달리, TV는 교체 주기가 7년 이상이라 소비자들도 단순히 가격만 저렴하다고 선뜻 구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TV의 벽(壁)에 막힌 중국

지난 2014년 9월 세계 TV 업계에 '중국발(發) 공습 경보'가 울렸다. 중국 TV 업체인 TCL이 유럽의 한 전시회에서 세계 최대 크기인 110인치 곡면(曲面) UHD(초고화질) TV를 선보인 것이다. 같은 전시회에서 중국 TCL과 하이센스는 당시 차세대 TV로 주목받던 QLED TV의 시제품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올해 상반기 삼성·LG·소니의 세계 TV 시장(금액 기준) 점유율은 46.4%에 달했다. 3사는 모두 점유율이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TV 판매액155억4286만달러(약 17조6000억원)로 작년(26.5%)보다 점유율이 2.6%포인트 올랐고, LG전자도 93억7714만달러어치를 팔아 전년보다 점유율이 2.6%포인트 상승했다. 소니 점유율도 소폭 증가했다. 반면 중국 주요 업체 8곳은 점유율이 정체 또는 감소하면서 모두 합친 점유율이 25%에 불과했다〈그래픽 참조〉. 아직 공식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3분기에는 점유율 격차가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승부가 갈린 지점은 2500달러 이상 프리미엄 TV 시장이다. 삼성·LG·소니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는 북미·유럽·아시아·남미·중동 등 전 지역을 싹쓸이하고 있다. 예컨대 2분기 기준 북미에서는 삼성(54.2%), 소니(23.5%), LG(22.2%)가 99.9%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아예 미국 프리미엄 시장에는 발도 못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업체들은 자국의 프리미엄 TV 시장에서조차 삼성·소니·LG에 밀리는 상황이다. 창홍(0.5%), 콩카(0.4%), 하이센스(0.2%), TCL(0.2%), 스카이워스(0.2%)로 1%를 넘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중국 업체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하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외면받으면서 중저가 시장에서도 힘이 빠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가 TV 돌풍의 대명사였던 하이센스·스카이웍스·콩카의 판매량이 줄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스카이웍스는 2016년 995만 대를 팔았지만 작년에는 809만 대로 줄었고 올 상반기에는 384만 대에 그쳤다.

◇삼성·LG, 신기술로 주도권…교체 주기가 긴 것도 영향

중국의 위협이 가사화되는 시기에 삼성과 LG가 과감하게 초대형·초고화질의 차세대 TV로 전환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015년 QLED TV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LG전자는 2013년에 세계 최초로 OLED TV를 일반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수율(收率·투입량 대비 정상 제품 생산 비율)이 낮아 적자 생산을 각오해야 했지만 과감하게 신기술 주도권을 움켜쥔 것이다.

여기에 TV는 스마트폰과 달리 교체 주기가 7~10년 정도로 긴 데다 가족이 같이 사용하는 전자제품이라는 특성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을 살 때는 '1년만 써보고 바꿀 수 있다'는 심리 탓에 쉽게 신규 브랜드의 중저가 제품을 구매하지만, TV는 브랜드 신뢰도가 낮은 중국 제품을 선뜻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이 장악한 30 ~40인치대 TV 시장의 규모가 줄면서 '물량의 힘'이 약해진 측면도 있다. 40인치 TV 시장은 2년 전 8100여만 대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6900여만 대에 그칠 전망이다. 반면 삼성·LG가 경쟁 우위에 있는 50~60인치대 TV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