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에스엠 면세점 1층 로비. 32인치 화면이 장착된 가로 1.4m, 높이 1.9m의 자판기가 설치돼 있었다. 터치 스크린 화면에는 일본 오사카 지역 열차권, 도쿄 지하철 24시간 이용권, 태국 이동통신 유심칩 등 아시아 지역 여행에 필요한 각종 이용권 27개가 이미지로 전시돼 있었다. 2개 상품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장바구니에 담자 신용카드나 간편 결제 서비스인 삼성페이로 결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했다. 결제를 끝내자 자판기 아래 구멍에서 실물 티켓이 담긴 봉투가 나왔다. 이 자판기는 하나투어가 지난달 설치한 '스마트 패스 자판기'다. 급하게 여행을 떠나는 고객들이 해외여행 필수품인 교통카드나 입장권, 이동통신 유심 등을 간편하게 살 수 있는 자판기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고객들이 해외 사이트를 검색할 필요없이 자판기에서 손쉽게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며 "고객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설치 한 달 만에 100건이 넘는 판매 실적을 올렸다"고 말했다.

17일 서울 중구의 에스엠면세점 로비에 여행 상품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여행 업체 하나투어가 설치한‘스마트 패스 자판기’는 급하게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일본 열차권이나 대만 이동통신 유심칩 등 해외여행 상품 20여 종을 판매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매장 무인화(無人化) 추세와 언제든 간편하게 제품을 사고 싶어하는 1인 가구 증가로 여러 제품을 살 수 있는 멀티(종합) 자판기가 늘고 있다.

간편결제 같은 IT(정보기술)의 발달로 여러 상품을 간편하게 살 수 있는 자판기가 늘어나고 있다. 커피나 음료만을 뽑을 수 있었던 자판기는 이제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는 종합 자판기로 진화하고 있다. 자판기는 길거리를 벗어나 편의점이나 영화관 등 각종 매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진화하는 자판기

영화관은 티켓 예매를 돕는 자판기를 넘어서 간단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종합 자판기를 도입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월드타워관 영화관에 100여종의 상품을 살 수 있는 자판기 '씨네투고'를 설치했다. 영화관에서 먹을 수 있는 음료나 음식뿐 아니라 뷰티, 헬스 제품 등 100여종의 상품을 자판기에서 살 수 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영화 상영 전후 대기 시간 동안 고객들이 편리하고 재밌는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자판기를 설치했다"며 "특히 조조나 심야 등 영화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든 음료나 스낵 상품을 이용할 수 있어 자판기 매출이 매주 20%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음료 업계는 냉각기술과 IoT(사물인터넷) 등 최신 기술을 적용한 자판기를 내놓고 있다. 코카콜라는 지난달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 페트병을 얼음이 섞인 슬러시로 만들 수 있는 자판기를 서울 용산구 영화관과 마포구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설치했다. 냉각 기술이 적용된 자판기에서 콜라병을 꺼내 뚜껑을 열면 음료가 급속히 얼어붙으며 슬러시 형태가 된다. 코카콜라 관계자는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한 자판기로 고객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려 했다"고 말했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농협·KT와 함께 육류를 살 수 있는 자판기를 경기 고양시 한 편의점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편의점의 주 고객층인 1인 가구를 겨냥해 일반 정육점이나 대형마트와 달리 고기를 300g 단위로 포장했다. IoT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폰으로 냉장고의 온도와 습도, 유통기한 등 품질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CU 관계자는 "언제든지 신선식품을 간편하게 살 수 있는 자판기를 전국 매장에 점차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지난달 200여종의 상품을 살 수 있는 대형 자판기 시범 서비스를 서울 중구 본사를 비롯한 4곳에서 시작했고, 이마트24도 지난 5월 밤에도 자판기에서 도시락이나 간편 음식을 살 수 있는 야간 자판기를 도입하고 연내 70여 점포로 확대할 계획이다.

무인화 열풍과 1인 가구 증가로 호황

자판기의 진화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매장 무인화(無人化)와 1인 가구 증가가 주요 요인이다. 한국자동판매기공업협회에 따르면 영화관이나 음식점에 설치된 무인 티켓 판매기는 올해 작년보다 1.5배가 많은 4000여대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매장 문을 여는 시간이나 점원 눈치 보지 않고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는 자판기를 선호하는 경향도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장 김난도 교수는 "스마트폰 간편 결제 서비스가 일상화되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는 비대면(非對面) 서비스를 선호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자판기 서비스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