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미국이 기준금리를 연 1.5 ~1.75%로 올려 연 1.5%인 우리나라보다 높아지면서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제 시장 금리(10년 만기 국채 금리 기준)는 이미 올 1월부터 한·미 간 역전된 상태였다. 시장 금리가 역전되면 금리가 낮은 쪽에서 금리가 높은 쪽으로 돈이 흐르는 게 정상적이다. 그렇지만 어찌된 일인지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채권 투자금은 1월 이후 8개월째 순유입되고 있다. 그 규모도 4월 7000억원대에서 지난달 2조2500억원대로 늘었다. 시장 참가자들의 말을 들어 보니 외국인 투자자들은 금리 차이뿐만 아니라 달러를 원화로 바꿔 투자하는 과정에서 이익이 나는지도 따지는데 그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금리 역전에도 한국 채권 계속 투자, 왜?

한·미 시장 금리는 지난 1월 한국이 연 2.769%, 미국이 연 2.782%로 0.013%포인트 차이로 역전됐다. 6월 미국이 3월에 이어 다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기준금리 역전 차이는 0.5%포인트로 벌어졌고, 시장 금리 차이도 따라서 커졌다. 8월 들어선 역전 차가 0.55%포인트로 벌어졌다. 그런데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금리 차만 보고 투자하진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달러를 들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있어 금리 차보다 더 중요한 게 외환 거래 차익이다.

미국 기준금리가 지난 3월부터 우리나라 기준금리보다 높아졌는데도,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채권 투자금은 1월 이후 8개월째 순유입을 기록 중이다. 사진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진행하는 모습.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외국인들은 들고 있는 달러를 직접 원화로 환전해서 한국 채권을 사지는 않는다.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달러를 원화와 1년간 스와프(교환)하는 방식으로 원화를 확보한다. 1년 후에 다시 안심하고 원화를 달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적용되는 지표가 외국인과 국내 투자자들의 스와프 수요와 공급에 따라 외환시장에서 형성되는 '스와프 레이트'다. 만약 스와프 레이트가 -1.5%고 현재 환율이 달러당 1130원이라면, 1년 후 환율을 1.5% 하락(-17원)한 달러당 1113원쯤이라고 치고 원화와 달러를 교환한다는 뜻이다. 스와프 레이트가 마이너스(-)면 국내 투자자는 그만큼 손해를 보고, 반대로 외국인은 이익을 본다. 예컨대 외국인이 1억달러를 들고 오면, 현재 환율 기준으로 1130억원어치 채권을 살 수 있고, 1년 뒤 1113억원으로 1억달러를 되살 수 있어, 여기서만 17억원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올 들어 스와프 레이트는 계속 마이너스 상태로, 8월엔 -1.382%였다.

시장 관계자는 "국내에선 보험사들이 해외 장기 투자를 위해 달러 스와프 거래를 원하는 수요가 많은데, 외국계 은행들이 그 수요를 모두 못 받아주고 있어서 스와프 금리가 계속 마이너스로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와프 레이트가 계속 마이너스인 게 1년 후인 내년에 원화 강세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하는 시장 참가자가 많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현 상태라면 외국인 투자자가 달러로 100억원어치를 들고 와서 원화로 스와프(교환)한 후에 원화 채권에 투자하면, 금리 역전으로 연간 5500만원(100억×0.55%) 손해를 보지만 환거래로 1억3820만원(100억×1.382%)의 이득을 본다. 결국 이익인 것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미국보다 낮은 시장 금리가 반드시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유출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며 "내외 금리 격차에 기대 환율 변화율을 더한 '기대투자 수익률'이 떨어질 때만 외국인 자금 유출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금융시장의 대외 안정성이 타 신흥국에 비해 높다는 것도 매력이다. 이승훈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내외 금리 차 확대는 신흥국의 자본 유출을 유발하는 불안 요인이기는 하지만, 신흥 시장 내 한국의 대외 건전성이 우수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1%포인트 넘는 한·미 금리 차이는 가보지 않은 길

다만 한·미 기준금리 역전 차이가 더 벌어지면 시장 금리도 차이가 더 커질 수 있다. 연말이면 한·미 기준금리 차이가 1%포인트까지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이 가장 크게 벌어졌던 때는 2006년 5~7월로 1%포인트를 기록했다. 당시 시장 금리 차이는 1%포인트에는 못 미쳤다. 그런데 3개월 동안 채권시장에선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지만, 주식시장에서 월평균 3조1000억원의 대규모 외국인 자금 이탈이 일어났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 차이가 크게 커지는 걸 '뭔가 문제가 있다'라는 신호로 여긴 외국인들이 투자금을 뺄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