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 소재 중소기업에 다니는 손모(27)씨는 지난 1일 기존에 갖고 있는 청약통장을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무주택 세대주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거절당했다. 손씨는 경기도 용인에서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그는 “입사 초기 잠깐 자취를 하다 월세 감당이 안돼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 빼곤 다 부모님과 사는데 다 가입 안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국토교통부가 청년 주거지원 정책 방안으로 내놓은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이 ‘빛 좋은 개살구’,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입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실제로 가입할 수 있는 청년들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상품 출시에 발맞춰 각종 이벤트까지 벌여가며 고객 몰이에 나서고 있지만 가입 요건을 충족하는 고객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입장이다.

◇ 은행들 "나이·소득·세대주 가입요건 까다로워 권유하기도 민망"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은 주택청약종합저축의 청약 기능에 10년간 연 최대 3.3% 금리와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을 제공한다. 만 19~29세(군 복무시 31세까지) 청년 중 연 3000만원 이하의 소득이 있는 무주택 세대주만 가입할 수 있다. 근로소득자 외에도 프리랜서, 학습지 교사 등 사업·기타 소득자도 대상자다. 문제는 가입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있는 청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이 출시된 31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창구에 관련 안내문이 놓여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9세 이하 정규직 근로자는 월 평균 241만1000원의 임금을 받고 있다. 보너스 등 연간 특별 급여는 262만8000원이다. 이를 합치면 29세 이하 정규직 직장인의 평균 연봉은 3156만원이다. 평균적인 정규직 직장인이라면 연 3000만원 이하 소득 요건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설령 연 소득 요건을 맞췄더라도 나이 제한 및 무주택 세대주 조건까지 함께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요건에 부합하는 청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은행들의 입장이다.

A은행 영업점 직원은 “나이·소득·세대주 등 현실적으로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대상자는 매우 한정적으로 결국은 중소기업에 취업해 본인이 전·월세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며 “전세자금 대출 신청고객이나 지점에 급여 이체 거래를 하고 있는 중소기업 신입들만 타깃으로 마케팅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권유하기 겁난다”고 했다.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 인근 B은행 영업점 직원은 “이쪽 고객들은 중소기업 직원이라 하더라도 다들 소득 요건에서 걸려 대상자가 하나도 없다”며 “영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근로소득자 외에 프리랜서나 학습지 교사 등 사업·기타 소득자도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나 과외 등으로 수익을 내는 청년들은 소득 신고가 되지 않아 무(無)소득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없다.

C은행 영업점 직원은 “아르바이트나 과외하는 대학생 고객들이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에 가입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했다”며 “지금과 같은 요건에서는 가입이 어렵다고 안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3000만원 정도면 적당하다 생각했다”…정책 시뮬레이션조차 안해본 국토부

은행권은 국토부가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가입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이런 문제점을 자초했다고 본다. 국토부가 청년 주거지원방안의 일환으로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을 만들면서도 ‘중소기업 취업 청년’만을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만 19~29세 미만 연령대가 보통 취업 초년~3년차라고 보고, 이 나이대 청년 중소기업 취업자들의 평균 연봉 수준을 약 3000만원으로 추정해 가입 요건으로 정했다. 주거실태조사(국토부) 중 20대 무주택 세대주 수, 계금융복지조사(통계청)의 연소득 통계치를 보고 3000만원이 적당한 기준이라고 판단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국토교통부 건물 내부에 층별 안내판이 붙어있다.

그러나 국토부는 실제로 몇 명이나 신청할지, 나이·연봉·무주택 세대주 등의 기준이 적당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기업에 취업한 청년들까지 정부가 지원을 해주기에는 주택기금 예산도 부족하고, 국민들의 공감대도 얻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 중소기업 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정한 뒤 가입 요건을 마련했다”며 “총 몇 명이나 신청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분석을 진행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만 19~29세 전체 청년들의 소득 분포를 분석한 뒤 특정 소득 이하의 청년들을 정책 대상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저연차 중소기업 청년들이 받는 연봉이 대략적으로 3000만원이다”는 주먹구구식 추정치를 기준으로 삼은 셈이다. 국토부는 이런 기준으로 보면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있는 청년은 약 70만~8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지만 뚜렷한 근거가 부족해 추정치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는 올해 6월말 기준 20~29세 취업자 약 371만5000명의 20% 수준이다.

정부 부처에서 정책 기획을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명확한 근거 없이 대략적인 추정을 가지고 정책을 만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을 만들다가 수혜자가 없거나 혹은 지나치게 많을 때 책임은 누가 지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출시 사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국토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국토부는 추후 신청 실적을 본 뒤 소득 요건 상향이나 연령 기준 상향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의 재정 여건만 좋다면 소득 요건을 몇백만원 높일 수 있지만, 추후 실적을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며 “연령 기준 상향도 국토부 차원에서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행정 고시와 금융감독원 협의 등을 거쳐야 해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