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가 50대1 액면분할을 통해 ‘황제주’에서 ‘국민주’로 탈바꿈한지 3개월이 됐다. 이 기간에 액면분할로 주가가 낮아지면서 예상대로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늘어나긴 했으나 액면분할이 주가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딱히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반도체 사이클 고점 논란이 제기되면서 이런 수급 변화가 주가를 달구는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삼성전자는 올해초 1주를 50주(액면가 5000원→100원)로 쪼개는 액면분할을 결정하고, 이후 준비 과정을 거쳐 5월 4일부터 시초가 5만3000원으로 거래를 재개했다. 액면분할 직전 주당 260만원을 웃돌아 개인투자자의 접근이 쉽지 않았던 삼성전자는 이제 누구나 가격 부담 없이 사고 팔 수 있는 평범한 주식으로 변신했다.
액면분할은 단순히 액면가를 낮춰 주식 수를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가치나 시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주당 가격이 낮아지면 매매 부담이 줄어들어 거래량이 증가할 수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늘어난 거래량이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예상해왔다
◇ 개미 열심히 샀지만…주가는 지지부진
① 주가 11% 하락…시총 36조원 증발
삼성전자(005930)는 올해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3거래일 동안 액면분할을 위해 거래를 중단했다. 거래 정지 전 마지막으로 장이 열린 4월 27일의 종가는 265만원이었다. 그리고 거래가 다시 시작된 5월 4일 5만1900원에 장을 마쳤다. 시초가(5만3000원)보다 2.08% 떨어진 수치였다. 삼성전자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7월 31일 종가는 4만6250원을 기록했다. 5월 4일 종가와 비교하면 10.89% 하락한 셈이다. 같은 기간 시총은 333조1630억원에서 296조8938억원으로 36조2692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7.24% 하락했고, 경쟁사인 SK하이닉스(000660)는 오히려 3.26% 상승했다. 이를 보면 액면분할이 삼성전자 주가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별로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② 거래대금도 액면분할 전보다 되려 감소
거래 재개 첫 날인 5월 4일 삼성전자의 거래량은 3957만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들어 액면분할을 하기 전까지의 일평균 거래량(29만주)보다 136배나 급증한 수치이자 역대 최대치였다. 이후 삼성전자의 거래량은 서서히 줄어들긴 했으나 액면분할 전보다는 확실히 증가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액면분할 후 현재까지의 일평균 거래량은 약 1336만주다.
다만 거래량 증가는 주식 수가 50배 늘어난 데 따른 영향으로, 거래대금을 보면 오히려 줄었다. 올해 액면분할 전 삼성전자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7247억원이었다. 액면분할 이후의 거래대금은 6521억원이다. 7월 한 달만 놓고 보면 4504억원으로 더 줄었다.
③ 개인 순매수 늘고, 기관·외국인은 이탈
각 투자 주체들의 매매 동향을 살펴보면 개인의 순매수세가 뚜렷하다. 개인 투자자들은 5월 4일부터 7월 31일까지 삼성전자 주식을 2조5663억원어치 순매수했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같은 기간 ‘팔자’에 더 집중했다. 특히 기관 이탈이 심했다. 외국인은 5207억원, 기관은 2조548억원 매도 우위를 나타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관·외인 이탈은 액면분할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미·중 무역갈등, 달러 강세, 반도체 사이클 고점 논란 등 대내외 리스크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④ 초반 몸살 공매도는 잠잠
액면분할 직후 삼성전자는 급증한 공매도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5월 11일엔 전체 거래의 25.6%가 공매도였으나 이내 곧 잠잠해져 현재는 공매도 거래비중이 1% 안팎으로 떨어졌다.
◇ 증권가 “하반기 효자도 D램” 대체로 밝은 전망
증시 전문가들은 “액면분할 효과는 미미하지만 주가를 크게 움직이는 건 결국 실적”이라며 하반기에는 삼성전자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일등공신인 D램이 하반기에도 견조한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권성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삼성전자에 대한 관전 포인트를 하반기에 둘 필요가 있다”며 “D램의 경우 평균판매가격(ASP)이 상승하면서 영업이익률이 7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디스플레이 부문에서도 플렉서블(Flexible)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가동률이 상승하면서 3분기에만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권 연구원은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7만원을 유지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반도체 업황이 하반기에도 양호할 것이라며 목표주가 6만6000원을 제시했다. 김 연구원은 “하반기 D램 수요는 서버와 모바일이 견인할 전망”이라며 “삼성전자의 현재 주가는 이익 규모 대비 저평가된 수준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타이트한 수급이 이어지면서 D램 가격이 지금보다 2%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디스플레이의 경우도 LCD(액정표시장치)는 부진하겠으나 주요 고객사의 신규 스마트폰 출시로 플렉서블 OLED 가동률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 연구원은 목표주가 7만원을 유지했다.
그러나 반도체의 성장성을 이어받을 미래 먹거리가 확보돼야 삼성전자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 매력과 반도체 호황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주가가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성장엔진 발굴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