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운용본부장(CIO) 장기 공백과 주요 보직자의 연이은 퇴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이번에는 대체투자 책임자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실장급 이상 9석 가운데 5석이 비게 됐다. 국민 노후자금 635조원을 굴리는 ‘자본시장의 공룡’이 사실상 와해 수준에 접어들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대체투자실을 이끌어 온 김재범(사진) 실장이 최근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체투자실은 국민연금의 국내 SOC(사회간접자본)와 부동산 투자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벤처, 기업구조조정, 사모 등의 영역에도 집중 투자한다.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규모는 2014년 46조6500억원에서 지난해 66조8000억원으로 3년새 약 43% 증가했다. 국민연금은 기금의 장기 수익률 제고를 위해 앞으로 주식·채권 비중을 낮추고 대체투자 비중을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최근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기금운용본부에 부문장제를 신설하고 대체투자 조직을 자산별 조직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체투자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자가 옷을 벗은 것이다.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김 실장이 대체투자실의 연말 목표치 미달에 대해 큰 부담감을 느껴온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주요 간부의 연이은 퇴사로 분위기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우선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강면욱 전 CIO가 지난해 7월 돌연 사표를 낸 후 1년째 비어있다. 최근 무산된 CIO 선출 과정에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인사 개입 논란까지 불거졌다. 강 전 본부장을 대신해 지난 1년간 CIO 직무대리로 일해오던 조인식 전 해외증권실장도 이달 초 갑자기 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국내주식 운용과 리서치, 포트폴리오 관리 등을 책임지는 주식운용실장도 김종희 채권운용실장이 겸임 중이다. 해외 인프라와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해외대체실도 최형돈 직무대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해외증권실은 조인식 CIO 직무대리가 퇴사한 뒤 임형주씨가 급히 직무대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 김재범 실장까지 나가면 CIO를 포함한 주요 보직 9석 중 5자리가 비게 된다.
기금운용직 A씨는 “지난해 초 전주로 내려올 때부터 쉬지 않고 악재가 터진 듯하다”며 “조직은 적폐로 몰리고 동료들은 우르르 나가고, 웃을 일이 하나도 없다”고 푸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퇴사자 수는 2014년 9명, 2015년 10명에서 지방 이전이 결정된 2016년 30명으로 급증했다. 2017년에도 27명이 기금운용본부를 떠났다. 올해 들어서는 글로벌 증시 부진의 영향으로 기금운용 수익률마저 0.89%(4월 말 기준)로 뚝 떨어졌다. 국민연금의 2017년 기금운용 수익률은 7.28%였다.
한편 국민연금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의 국내외 대체투자 금액은 총 67조7977억원이다. 이 금액이 전체 기금(금융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7%로, 공단의 연말 목표 비중인 12.5%를 밑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