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워즈를 좋아해서 회사 이름을 '갤럭시(Galaxy, 은하계)'로 정했습니다. 원래 말이 많은 편이라 가끔은 제가 얘기하는 걸 듣는 게 지겨울 정도죠.(웃음)"
17일 늦은 오후.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만난 마이클 노보그라츠(Michael Novogratz) 갤럭시 디지털 캐피털(Galaxy Digital Capital) 대표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블룸버그, CNBC 등 유력 경제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암호화폐 투자 거물’ 답게 그는 여러 대의 카메라와 조명 앞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이날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창업 투자·지원 업체) ‘해시드(Hashed)’가 별도로 마련한 특별 인터뷰에 참석한 노보그라츠 대표는 시종일관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현장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인터뷰 시작 직전엔 맥주를 주문하기도 했다. 금융인들에게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이다.
블록체인 콘퍼런스 ‘비욘드 블록 서밋 서울(Beyond Blocks Summit Seoul)’ 기조 연설을 위해 방한한 노보그라츠 대표는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암호화폐 부호 10위(자산 가치 10억달러, 약 1조1300억원)에 오른 업계 유명 인사다.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 파트너, 포트리스(Fortress Investment Group) 헤지 펀드 매니저를 거친 정통 금융맨이지만 일찌감치 암호화폐에 투자했을 정도로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프린스턴 출신 금융 엘리트가 색다른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자신만의 특별한 투자 원칙은 가지고 있을까. 노보그라츠 대표와의 대화를 정리했다.
◇ 금융위기 때 암호화폐 입문…“나는 행운아”
-첫 암호화폐 투자는 언제였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있었고 2010년부터는 유럽에 재정 위기가 닥쳤다. 결과적으로 중앙은행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분산화된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에 관심이 생겨 처음 투자한 건 2012년으로 기억한다. 포트리스에서 헤지펀드 매니저로 근무할 때다. 당시 비트코인 한 개 가격이 95달러였다.
그 후 한 포럼에서 누군가 나에게 ‘프런티어 통화(성장 잠재력이 많은 통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더라. ‘진정한 프런티어 통화는 비트코인’이라고 답했더니 다음날 파이낸셜 타임스에 머릿 기사로 실렸다. 이렇게 시작됐다. 돈을 벌고 싶다면 (해당 분야에)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조셉 루빈(시가 총액 2위 암호화폐 ‘이더리움’ 설립자)이 내 대학 룸메이트였다. 조셉은 휴양지인 바베이도스에서도 이더리움 프로젝트 관련 코딩 작업을 했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이더리움 프로젝트 개발 초창기 그의 브루클린 사무실에 간 적이 있는데 다양한 젊은 친구들이 모여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더라.
조셉은 아주 영리한 친구다. 그는 진심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일방적인 웹 시스템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쌍방형으로 소통하는 ‘웹 2.0’을 만든 것과 비슷하다. 조셉에게 이 산업의 개념을 물었더니 ‘분산된 소유권(decentralized ownership)’이라고 하더라. 그는 실제로 그런 세상을 믿고 있다.”
-믿었다고 해도 행동하긴 쉽진 않았을 텐데.
“난 운 좋게(lucky enough)도 많은 트레이딩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확실한 냄새를 맡았다면 사야 한다. 외국에서 장외 거래(OTC)로 비트코인을 많이 샀다.”
◇ 투자 4대 원칙 지켜…“EOS 유망”
-특별한 투자 원칙이 있나.
“4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는 ‘투자자가 되라(be investors)’, 두 번째는 ‘다각화하라(be diversify)’, 세 번째는 ‘중심에 머물라(be in the center)’, 마지막은 ‘절제하라(be disciplined)’다.
우선 실전 투자자가 되어야 하고 투자를 한다면 투자처를 나눠서 투자할 필요가 있다. 과거 중국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데, 한 곳에 몰아서 투자했다가 후회한 경험이 있다. 예를 들어 바이두, 텐센트 등 여러 기업에 나눠서 투자했다면 훨씬 결과가 좋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심에 머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한국에 방문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긴 여행이지만 중심에 있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왔다. 현재 한국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다. 절제해야 한다는 점은 특히 변동 폭이 큰 암호화폐 시장에서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 중 블록체인의 구조나 토큰의 작동 원리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향후 시장 전망은 어떻게 보나. 유망한 암호화폐는?
“낙관적(bullish)으로 보고 있다. 블록체인 산업은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중에선 EOS 코인을 좋아한다. (노보그라츠는 EOS에 투자했다.) EOS는 다른 블록체인보다 운영이 빠르다. 의사 결정 구조도 간결하다. (EOS는 21개 팀의 블록프로듀서가 블록체인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아주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댑(DApp·암호화폐 응용프로그램) 중에선 ‘왁스(WAX)’를 좋게 보고 있다. (WAX 토큰은 게임 아이템을 획득하고, 구매, 판매하는 데 사용된다.) 게임 아이템에 블록체인을 도입한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한다. 게임 산업은 아주 큰 산업이기 때문이다. 프로토콜 중에선 ‘인터넷 오브 블록체인’을 표방하는 코스모스(Cosmos)가 유망하다고 생각한다.”
◇ 암호화폐 옥석 가려질 것…“한국 투자자들 열려 있어”
-시장에 거품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이다. 엄청나게 많은 블록체인이 탄생하고 있는데, 사실 수백 개의 블록체인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 최후엔 5개 정도만 살아남게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어떤 블록체인이 살아남을지 예상하는 건 쉽지 않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은 매혹적인 곳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한국 소비자·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열려 있다. 미국과 비교하면 받아들이는 속도가 4~5배는 빠른 것 같다. 현재로선 미국에서 분산화된 우버, 분산화된 스포티파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한국에서 한국 버전의 분산화된 우버나 스포티파이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