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에서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일방적으로 노동계 편을 들면서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에 휩싸였다. 최저임금위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13차 전원회의를 열었지만, 전체 위원 27명(공익위원·사용자위원·노동자위원 각 9명) 가운데 공익위원 9명과 노동자위원 5명만 참석했다. 전날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화 방안이 부결되자, 사용자위원들이 "최저임금 심의 참여는 더는 의미가 없다"고 불참한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와 공익위원들은 안건을 제대로 심의하지 못한 채 40분 만에 회의를 끝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14일까지 최저임금 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격"
전날 회의에서 공익위원 9명 전원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입장을 고려해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자"는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대립할 경우 사실상 최저임금액을 결정하는 공익위원들이 단 한 명도 경영계 입장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현 최저임금위는 '노동계 9, 중립 9, 경영계 9' 구도가 아니라 사실상 '노동계 18, 경영계 9'인 상황이라고 경영계는 보고 있다.
한 사용자위원은 "솔직히 최소 한 명 정도는 소상공인 등의 입장을 고려해 찬성표를 던질 줄 알았다"며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이 선수로 뛰니 위원회가 어느 때보다 (노동계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공익위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사용자위원들이 업종별 차등 지급을 요구했지만 한 번도 표결에서 승리한 적 없다"며 "정치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업종별 차등 지급이 어렵다는 데 (공익위원들이) 의견을 모은 것"이라고 했다.
올해 최저임금위가 노동계 편에 설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나와 있었다. 지난 5월 임명된 공익위원 9명 모두가 친노동 혹은 친정부 성향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주장이 있다. 최저임금위 위원장인 류장수 부경대 교수는 2012년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일자리혁명위원으로 활동했고, 현 정부 들어서도 대학구조개혁위 위원장을 맡은 인물이다. 공익위원인 김혜진 세종대 교수는 지난해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일자리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도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부 정책평가위원회 위원,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 전문가패널 등을 역임했다. 권혜자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한국노총 정책국장 출신으로, 사실상 노동자위원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머지 공익위원들도 경영계에 우호적이지 않거나 중립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경영계 쪽 주장이다.
◇이번에도 두 자릿수 인상 가능성
이런 인적 구성 때문에, 지난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 여파 등으로 각종 경제 지표가 악화하는 상황이지만 내년 최저임금도 노동계 요구대로 또다시 큰 폭으로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혼란 때문에 큰 폭 인상을 꺼리겠지만, 결국 노동계가 자신들이 촛불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올해도 10% 넘는 인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인상률이 10%를 넘으면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 7530원에서 8000원대 중반으로 오르게 된다. 청년실업률이 두 자릿수(10.2%·올해 1분기 기준)를 기록하고, 내년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3.9%· OECD 전망)보다 낮은 2.7%(KDI)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언급하며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을 보전하려고 재정 등을 동원해 지원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 지속 가능하지 않은 대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