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성들에게 가발은 더 아름다워지기 위한 패션 소품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살짝 커버해 자부심을 높이려는 수요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늘어나고 있어요."

국내 가발 업계 1위 하이모의 홍정은(41) 부사장은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전문 브랜드 '하이모 레이디'를 출시해 8년째 이끌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 하이모 본사에서 만난 그는 "하이모 레이디 사업은 여성들의 삶을 행복하게 가꿔주는 '해피 비즈니스'"라고 설명했다. 4층 매장 벽면에는 다양한 여성용 가발이 전시돼 있었다. '여자를 바꾸는 건 메이크업보다 헤어 스타일'이란 글귀도 보였다.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가발 업계의 주요 고객은 50대 이상 탈모 남성이었다. 여성은 드물었고, 간혹 있다고 해도 질병 등으로 인한 탈모나 빈모·무모증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홍 부사장은 '머리카락이 지금보다 딱 2~3%만 더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고민하는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삼아 2011년 하이모 레이디를 시작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가발 시장에서 여성 고객 점유율이 남성을 추월했다"며 "우리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홍정은 하이모 부사장이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여성 전용 가발 ‘하이모 레이디’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삶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밸류 크리에이터’가 되겠다”고 말했다.

홍 부사장은 1987년 하이모를 만든 홍인표(71) 회장의 차녀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 경영대학원에서 창업 매니지먼트를 전공했다. MBA 과정을 밟으면서도 여름방학 때 귀국해 미용실에서 하루 12시간씩 파마 연습을 하며 미용사 자격증을 땄다. 2007년 하이모 기획실 차장으로 입사했다.

홍 부사장은 "가발에서는 원사(原絲)가 중요한데, 사람의 머리카락[人毛]이 반드시 가장 좋은 것만은 아니다"고 했다. 하이모가 개발한 '넥사트모'처럼 햇볕 아래 있어도 탈색되지 않고, 비바람을 맞아도 원래 형태와 볼륨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모 레이디는 '블랙 펄'이나 '이브' 등 붙임머리 방식의 부분 가발 제품을 선보였다. 구리를 입힌 기능성 원사를 이용해 자연스러운 갈색을 내고, 항균 효과가 있는 '브론즈' 제품군도 내놓았다.

최근에는 풍성한 머릿결을 만들어주는 증모용(增毛用) 부분 가발인 '페더라인'을 개발했다. 깃털(feather)처럼 가볍다는 뜻이다. 이전까지는 기존 모발에 붙임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실리콘 접착제나 지름 3~4㎜짜리 플라스틱 링(ring)을 사용해 불편했다. 페더라인 제품은 지름 1㎜짜리 마이크로 링을 도입해 섬세하게 붙일 수 있고,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홍 부사장은 "지난 3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세계 3대 미용박람회 '코스모프로프(Cosmoprof)'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고, 일본 수출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양 사람에 비해 한국인의 두상(頭像)은 참 다양하다"며 "3D 스캐너 기술을 활용해 맞춤 가발을 만든다"고 했다. 가발을 착용한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버추얼 헤어 시스템'도 도입했다. 충남 천안 중앙연구소는 원사 제작과 가발 제작 시스템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 칭다오와 웨이하이, 미얀마에는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전국 61곳 직영점에서 500여 명의 스타일리스트가 근무한다.

하이모는 지난해 5만여 개 가발을 제작해 78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기성 가발은 40만~120만원 수준이지만, 맞춤 가발 가격은 최고 180만원까지 받는다. 하이모는 18년째 소아암 환자 1270여 명을 대상으로 가발 기증 사업도 벌였다.

홍 부사장은 "현재 20% 정도인 하이모 레이디 매출 비중은 향후 더 커질 전망"이라며 "하이모가 삶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밸류 크리에이터(value creator)'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