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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 평범한 평일 오전의 대형마트에 ‘로봇 아이돌’이 등장했다. 어린아이 크기의 흰색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에게 말을 건네며 손짓하자 “귀엽다”는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일부 시민들은 로봇의 가슴팍에 달린 태블릿을 조작하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로봇은 이마트가 선보인 휴머노이드 안내원 ‘페퍼(Pepper)’다. 페퍼는 일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이마트는 대형마트에 적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매장에 시범 적용했다.

페퍼는 키 1.2미터에 발에는 바퀴가 달린 흰색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생김새는 영화 ‘아이로봇’에 나오는 로봇과 비슷하다. 다양한 몸짓을 보이며 사람과 눈을 맞추며 대화할 수 있고 가슴에 있는 태블릿을 통해 각종 정보를 제공해준다. 음성은 아마존의 ‘폴리’ 음성합성 기술을 활용한 젊은 여성 목소리로 실제 사람 목소리로 착각할 만큼 자연스럽다.

이마트 로봇 도우미 ‘페퍼’의 모습.

페퍼는 이마트가 지난해 9월 스타필드 고양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나오’의 후속작이다. 간단한 엔터테인먼트 기능만을 제공하던 나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쇼핑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 김기남 이마트 S랩 부장은 “페퍼는 엔터테인먼트 기능만을 제공하던 나오와 달리 실제 쇼핑에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어 실용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현재 페퍼가 제공하는 쇼핑 정보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음성인식을 통해 매장 입구에서 이번주 행사 상품을 알려주고, 휴점일 정보와 소비자가 자주 물어보는 질문에 답변한다. 수입맥주 섹션에서는 맥주병을 가져다 대면 상품 로고를 인식하고 맥주의 알코올 도수, 쓴맛의 정도 등과 함께 수상 내역, 유사제품과 추천 안주 등 상품 정보를 안내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머신러닝을 통한 상품 이미지 인식은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것으로, 이마트 S랩이 자체적으로 개발했다”고 전했다.

페퍼는 일본에선 음식점, 호텔, 쇼핑몰 등지에 2만대 이상이 운영되고 있는 대중적인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통해 집객을 유도하는 키오스크 용도로 쓰인다. 이마트가 도입한 페퍼 또한 얼굴을 인식시키면 나이를 맞추거나 포즈를 취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간단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갖췄다.

이날 페퍼를 접한 시민들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포즈를 취하는 페퍼 옆에 서슴없이 다가와 셀카를 찍는 소비자도 보였다. 매장을 찾은 김순자(69)씨는 “눈이 참 귀엽게 생기고 크기도 너무 크지 않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직원이 바쁘면 말을 걸기 껄끄러운데 로봇이 있다면 더 편하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마트 성수점 맥주 매대 앞에서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는 페퍼.

그러나 페퍼를 전국 145개 이마트 모든 매장에서 접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페퍼가 제공할 수 있는 쇼핑 정보는 할인행사와 휴점일, 맥주 정도로 한정돼 있다. 아직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되지 않아 고정적인 키오스크 역할에 머문다. LTE 모뎀을 장착해 매장 정보를 무선으로 받아 작동하지만, 속도가 느려 4~5초 후에야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페퍼를 접한 시민들 또한 ‘귀엽다’,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실용성에는 의문을 표했다. 매장에서 만난 백지희(64)씨는 “귀엽게 생겼지만 마트를 주로 찾는 내 나잇대 사람들에겐 사용법이 복잡할 것 같다”며 “마트에서 사는 것은 뻔하고 쇼핑 정보도 전단 등을 통해 이미 충분히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개발을 통해 페퍼를 보완해나갈 계획이다. 이마트는 이날 서울대 바이오지능연구실과 산학 공동연구 협약을 맺고 페퍼의 자율주행 기술을 함께 연구하기로 했다.

페퍼는 이마트 성수점에서 이달 30일까지 20일간 안내도우미로 활동한다. 김기남 S랩 부장은 “나오가 첫선을 보인 지 반년 만에 실제 쇼핑 정보 제공이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며 “전 매장 확대 도입 가능성을 섣불리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번 테스트는 실용화 가능성 검토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