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올해 4분기까지 카카오 블록체인(block chain) 서비스를 내놓겠습니다. 카카오의 주요 콘텐츠를 블록체인 위에서 먼저 구현하고, 아시아의 수많은 블록체인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이 만든 서비스도 탑재할 계획입니다."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그라운드X 사무실에서 만난 한재선(46) 대표는 "블록체인은 수많은 콘텐츠와 서비스가 유통되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라며 "아직 초기 시장인 만큼 서둘러 독자 블록체인 서비스를 내놓고 아시아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라운드X는 지난달 카카오가 일본에 세운 블록체인 자(子)회사다. 한 대표는 카카오의 블록체인과 가상 화폐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특정 데이터가 담긴 블록(block)을 연결(chain)한 시스템이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사용자가 각자 컴퓨터에 같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조작이나 해킹이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온라인 유통 거래 장부인 셈이다. 한 대표는 "예를 들어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내가 기부한 금액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아프리카의 어린이에게 언제 전달됐는지와 같은 유통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며 "카카오 블록체인에서는 수익 사업뿐만 아니라 이런 사회에 도움이 되는 각종 서비스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가상 화폐 발행과 관련해 "외부의 돈을 모으기 위한 ICO(코인 공개)는 안 하겠지만, 카카오 블록체인 안에서 유통하는 가상 화폐를 별도로 발행하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 화폐보다 블록체인 기술에 집중"
카이스트 전자전산학과(박사)를 나온 한 대표는 2007년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스타트업 넥스알을 창업한 빅데이터 전문가다. 2014년 스타트업 육성 기업 퓨처플레이에서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아 블록체인을 연구했다. 한 대표는 "지난해 12월 김범수 카카오 의장 앞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특징과 한계'를 주제로 강연했는데 이후 김 의장에게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카카오 블록체인 사업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카카오가 꿈꾸는 블록체인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라며 "스타트업이 카카오의 블록체인을 가져다 자사의 서비스나 콘텐츠 유통을 더 수월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등장한 해외 블록체인들은 하나같이 탈(脫)중앙화라는 철학적 가치에 충실하다 보니 전송 속도 등 기술적으로 미비한 점이 많다"며 "우리는 탈중앙화 방식의 장점과 별도의 서버를 두는 중앙화 방식의 장점을 혼합해 처리 속도가 매우 빠른 블록체인 플랫폼(기반)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지금까지 블록체인은 이론상 모든 참가자의 PC에 거래 내역을 저장하기 때문에 거래 결과가 길게는 3~4일이나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카카오는 여기에 신뢰할만한 서버(대형 컴퓨터) 처리 방식도 도입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카카오만이 가진 장점으로 서비스 제작과 모객(募客) 능력을 들었다. 한 대표는 "카카오는 예전에 카카오톡을 출시한 뒤 이른 시간에 400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모은 노하우가 있다"며 "블록체인도 이런 경험을 살려 론칭 초기부터 카카오톡 못지않은 빠른 이용자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는 "블록체인 시장의 경쟁자인 독일 모바일 메신저 업체 텔레그램이나 일본 라인보다 우리가 규모나 인지도에서는 밀리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그들은 가상 화폐나 거래소에 집중하고 있고 우리는 좀 더 큰 판인 블록체인 생태계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블록체인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
그라운드X는 한국이 아닌 일본 도쿄에 세워진 법인이다. 그는 "일본을 거점으로 아시아 시장을 석권하는 것이 목표"라며 "일본은 블록체인 관련 법규, 금융정책 등 제도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실제 가상 화폐가 유통되고 있어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비스 거점이 일본이긴 하지만 블록체인 개발 인재를 끌어모으고 실제 개발을 진행하는 역할은 한국 지사가 맡는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카카오가 왜 블록체인 사업에 나서느냐'는 질문에 "글로벌 시장 개척"이라고 답했다. 그는 "카카오의 현재 서비스를 그대로 해외로 내보내 성공하기는 사실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블록체인이라는 새 판을 짜면 글로벌 진출에도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은 (우리나라 IT 기업이 해외에서 성공할) 유일한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아직 구글·아마존 등 해외의 거대 IT 기업들이 블록체인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지금 카카오가 독자 블록체인 생태계를 제대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 주자지만 판을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