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이 지난 6일 잘못 배당한 '유령 주식'을 받았던 직원 가운데 일부는 회사가 "해당 주식을 팔지 말라"고 수차례 공지했음에도 문제의 주식을 팔아 치운 것으로 드러났다. 고객의 신뢰를 근간으로 하는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대박'의 꿈을 좇아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9일 '삼성증권 배당 착오 입력 사고에 대한 대응' 브리핑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날 "삼성증권 일부 직원은 회사의 경고 메시지 및 매도 금지 요청에도 착오 입고된 주식을 매도하는 등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지난 6일 직원들에게 문제의 주식을 팔지 말라고 수차례 긴급 공지했다. 이날 오전 9시 45분 모든 부서에 전화로 '직원 매도 금지' 메시지가 전달됐다. 이어 오전 9시 51분, 9시 56분과 10시 1분에는 사내망을 통해 '직원 계좌 매도 금지'라는 팝업 공지가 세 차례 나갔다. 당일 삼성증권 직원 16명이 해당 주식을 매도한 시간대는 오전 9시 35분~10시 5분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회사의 경고 메시지가 나간 후에도 주식을 팔아 치운 셈이다. 삼성증권 직원들의 매도 행위는 회사 측이 오전 10시 8분 전체 임직원 계좌에 대해 주문 정지 조치를 내린 이후에야 완전히 차단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삼성증권이 매도 금지를 공지한 뒤에도 주식을 내다 판 직원이 몇 명인지, 이들의 거래 규모가 얼마인지 등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검사를 통해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이 지난 6일 우리사주를 통해 직원들에게 배당한 '유령 주식'은 28억1000만주였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 전산상에서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가운데 501만주를 이날 오전 9시 35분부터 10시 5분까지 30분 동안 삼성증권 직원 16명이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후 삼성증권은 사태 수습을 위해 직원들이 매도한 501만주만큼 주식을 사들였다. 직원들이 세상에 없는 '유령 주식'을 돈을 받고 팔았기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실제 주식을 사거나 빌려서 매수자에게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260만주는 당일 오전 장내에서 매수했고 나머지 241만주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로부터 차입했다. 그런데 직원들이 주식을 내다 팔 때 일시적으로 폭락했던 삼성증권 주가가 사들일 때는 3만7000원 수준으로 회복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삼성증권이 100억원대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은 이 손실을 주식을 매도한 직원 16명에게 물어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100만주 이상 매도한 직원의 경우, 20억원 안팎의 손해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증권 측은 "회사가 부담한 주식 매입 금액을 해당 직원에게 청구하고, 만약 불응하면 구상권 청구 등 법적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회사 측 조사에서 "실제 매도가 되는지 테스트해 본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막을 기회 여러 번 있었다"
삼성증권 '유령 주식' 사태의 근본 원인은 "회사 차원의 내부 통제 및 관리 시스템 미비"라는 게 금감원 분석이다. 삼성증권 배당 실무자가 우리사주 1주당 1000원의 배당금을 줘야 할 것을 1000주로 잘못 입력한 것은 지난 5일이었다. 이날 상급자인 팀장이 결재하면서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팀장도 실무자가 입력한 대로 승인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후에도 사태 확산을 막을 기회가 있었지만 삼성증권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유령 주식'이 직원들 계좌에 잘못 들어온 시점은 지난 6일 오전 9시 30분이었다. 담당자가 잘못을 파악한 건 9시 31분, 회사가 전체 임직원 계좌에 주문 정지 조치를 한 건 10시 8분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입력 오류를 인지하고 주문을 차단하는 데까지 37분이 소요되는 등 위기 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른 증권사에도 비슷한 문제점 발견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1주당 1000원의 배당금을 줘야 할 것을 1000주로 잘못 배당한 데에는 시스템 문제도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금 배당과 주식 배당이 하나의 시스템에서 이뤄진 탓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고 밝혔다. 비슷한 사고는 다른 증권사에서도 터질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중소 증권사 4곳을 점검한 결과 삼성증권과 비슷한 시스템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유령 주식' 대량 매도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봤다는 신고가 이날 오후까지 180건 접수됐다. 금감원은 주식 거래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공매도 폐지 논란으로 비화
삼성증권 사태는 공매도 폐지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공매도란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미리 팔고 나중에 사서 되갚는 것으로, 하락장에서 수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증거금을 내고 주식을 빌려와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만 허용돼 있다. 그런데 삼성증권 직원들의 '유령 주식' 매매는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일단 매도부터 하는 '무차입 공매도' 형태로 이뤄졌다. 이와 관련, 일부 투자자는 "법으로 금지된 무차입 공매도가 증권사 전산 조작만으로 가능하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공매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 청원 글에는 9일 오후 참여 인원이 18만70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공매도가 주가 거품을 방지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도 있다며 폐지 요구는 지나치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번 사고를 공매도 자체의 문제로 연결 짓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이날 "결과적으로 금지된 무차입 공매도가 벌어진 데 대해 제도 점검을 통해 분명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