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37)씨는 주말에 가끔 대형마트에서 미국산 소고기 안심·채끝 등의 부위를 사 집에서 스테이크로 구워 먹는다. 그는 "아이가 둘인데 한우로 스테이크와 이유식을 만들 경우 10만원 가까이 들지만 미국산은 3만~5만원이면 되고, 같은 수입 소고기 중에선 호주산보다 미국산이 입맛에 더 잘 맞는다"고 했다. 김씨는 취업준비생이던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광우병에 대한 방송을 본 후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인간 광우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김씨는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 무슨 근거로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국민 1인당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 한국이 1위
'광우병 사태' 10년이 지난 뒤, 한국은 1인당 미국산 소고기 수입 1위 국가가 됐다. 9일 미국육류수출협회가 발간한 연간 수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총 12억2000만달러(약 1조3000억원)로, 일본(18억9000만달러)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았다. 한국의 수입액은 미국 소고기 수출 총액의 17%에 달한다.
하지만 1인당 연간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한국인은 3.5㎏, 일본은 2.4㎏, 멕시코는 1.9㎏ 순으로 소비했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미국산 소고기를 1.5배 가까이 많이 소비하는 셈이다. 한국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액은 2015년 전까지 3∼5위권에 머물렀지만, 2016년 멕시코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미국산 소고기는 2001년 '소고기 수입 자유화' 이후 한국 수입 소고기 시장에서 꾸준히 1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3년 미국 내 광우병 발병이 확인되면서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이후 미국 정부는 한국에 소고기 수입 재개를 요구했고, 양국 정부는 협상 끝에 2008년 사육 기간 30개월 미만 소고기에 한해 수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MBC '피디수첩'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먹은 사람도 역시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며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하게 됐다.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뇌에 구멍이 뻥뻥 뚫려 죽는다"는 괴담(怪談)까지 돌며 '광우병 촛불시위'가 확산됐다.
◇"한우와 맛 비슷한 미국산"… 괴담 불안 불식되며 호주산 인기 눌러
하지만 이러한 괴담이 대부분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광우병의 원인은 소에게 소 육골분으로 만든 사료를 먹였기 때문인데, 이러한 사료의 사용은 20여 년 전에 금지됐다. 때문에 2000년대 중반 이후 발병 사례가 급격히 감소했고, 2010년대 이후엔 광우병 발생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1년에 1~2건 수준으로 줄었다. 2008년 이후 미국산 소고기를 팔지 않다가 2012년 판매를 재개한 대형마트의 축산 담당 바이어는 "처음에는 소비자들한테 외면받거나 항의가 들어올까 노심초사했었지만, 오히려 한우와 호주산 소고기보다 성장세가 가파르다"고 했다.
불안감이 불식되며 미국산 소고기는 호주산을 넘어섰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수입 소고기 중 미국산의 비중은 50.7%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반면 수입산 소고기 중 가장 비중이 높던 호주산은 43.6%에 그쳤다. 호주·뉴질랜드의 경우 풀을 먹여 소를 키우지만, 미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소에게 옥수수 등 곡물이 함유된 사료를 먹인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방 성분이 상대적으로 적은 호주산 소고기보다 한우와 맛이 비슷한 미국산 소고기가 한국 소비자 기호에 더 맞는 측면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