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는데 알앤엘바이오 상장폐지의 주인공이군요."
"대표가 불안하면 님이 팔고 떠나세요. 괜히 시비걸지 말고."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업체 네이처셀의 온라인 주식토론방에는 며칠째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이 회사를 이끄는 라정찬 대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9일 네이처셀이 조건부 품목허가를 신청한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조인트스템’에 대해 반려 처분을 결정했다. 이 때문에 주가가 연일 추락하자 주주들이 라 대표에 대한 거친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라 대표가 과거 주가 조작과 자금 횡령,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을 드나든 사례를 들며 “네이처셀에 투자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대편 주주들은 해외에서의 연구실적 등을 거론하며 “투자가치가 충분하다”고 반박한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아직 실체가 불분명해 적정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회사”라며 말을 아꼈다.
◇ 식약처 허가 반려에 주가 ‘추풍낙엽’
코스닥시장에서 네이처셀(007390)주가는 이달 16일까지만 해도 장중 사상 최고가인 6만4600원까지 올랐다. 2017년 3월 16일 종가인 4575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주가가 14배 이상 치솟은 것이다. 시가총액도 약 3조3000억원으로 코스닥 6위 자리까지 올라갔다.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올린 동력은 이 회사가 개발 중인 신약 라인업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그간 네이처셀은 줄기세포를 직접 투여하는 방식의 퇴행성관절염 치료제(조인트스템)와 치매 치료제(아스트로스템)를 개발하고 있다며 임상 진행 상황을 부지런히 홍보해왔다.
신문과 방송 등에 ‘중증 질환을 수술없이 해결하는 세계 최초의 치료제’로 소개되면서 네이처셀은 순식간에 코스닥시장의 총아(寵兒)로 우뚝 섰다. 시장의 기대감은 최근 식약처가 조인트스템의 조건부 품목허가 여부를 심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절정을 이뤘다. 조건부 품목허가는 임상 2상 자료를 바탕으로 의약품 시판을 허가하는 제도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 달리 식약처는 네이처셀의 조건부 품목허가 신청을 심의위원 만장일치로 반려 처분했다. 임상 참여자 수가 13명에 불과할 뿐 아니라 증상 개선도 46.15%(질병 진행 53.85%)에 그쳐 치료 효과가 탁월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반려 이유였다.
악재는 곧바로 주가에 반영됐다. 네이처셀 주가는 19일 가격제한폭(29.9%)까지 떨어져 4만3600원에 장을 마쳤다. 20일 소폭 오르는 듯하던 주가는 21일 다시 가격제한폭까지 급락하면서 3만600원을 기록했다. 16일 최고가를 찍고 불과 5일 만에 주가가 반토막난 것이다.
23일에도 네이처셀 주가는 전날보다 3550원(12.52%) 하락한 2만4800원에 장을 종료했다. 시총 순위도 6위에서 16계단 밀린 22위까지 추락했다. 23일 종가 기준 네이처셀의 시총은 1조3128억원이다. 일주일 만에 2조원가량 증발한 셈이다.
◇ 과거에도 임상 부실…횡령에 노벨상 논란도
사실 제약·바이오 업체가 임상 시험이나 당국 허가 획득에 실패하는 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투자자들도 이같은 리스크 요인을 감수하고 제약·바이오 섹터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네이처셀 관련 논란이 유독 거센 이유는 뭘까.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한 가지 원인만 꼽을 수 없다면서도 “라 대표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 각종 구설수에 올랐던 그의 행적이 이번 품목허가 반려 이슈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의 거부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라 대표는 2001년 알앤엘바이오(현 알바이오)라는 기업을 설립해 버거씨병 치료제 ‘바스코스템’을 개발한 바 있다. 그는 당시에도 식약처에 바스코스템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신청했고, 알앤엘바이오 주가는 급등했다. 하지만 당국은 그때도 “임상 데이터가 미흡하다”며 승인을 하지 않았다. 라 대표는 식약처의 자료 보완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라 대표는 2012년 초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2011년 노벨상 최종후보’로 소개되기도 했다. 인터뷰에는 스웨덴 노벨상위원회가 라 대표의 줄기세포 연구 공로를 인정해 그를 노벨생리의학상 최종후보에 포함했으나 안타깝게 수상에는 실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벨상위원회는 후보를 외부에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
1년 후인 2013년 라 대표는 줄기세포 불법시술과 주가 조작, 회사자금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징역 3년·집행유예 4년)됐고 알앤엘바이오는 상장폐지됐다. 이후 라 대표는 알앤엘바이오가 건강기능식품 시장 진출을 위해 2010년 경영권을 인수한 삼미식품의 이름을 네이처셀로 바꾸고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를 이어왔다.
◇ 주주들 갑론을박…전문가들 “투자 자제할 때”
주말을 앞둔 23일 장 마감 후에도 네이처셀 주주간 공방은 지속됐다. 한 투자자는 “바스코스템 임상 때도 참여자가 17명에 불과했는데 이중 8명은 심지어 관리기준 위반 사례였다”며 “시행착오로 이해하기에는 어설픈 연구가 반복되고 있어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주는 “주주총회에서 라 대표 해임을 건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이처셀은 이달 30일 정기 주총을 열고 라 대표를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반면 라 대표를 옹호하는 한 투자자는 “라 대표는 혐의 가운데 배임 등 일부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다시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에게 다들 너무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주주도 “네이처셀이 미국·일본 등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고 중국 기업과도 공동연구를 시작했다”며 “사기꾼 집단이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여의도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네이처셀에 대한 평가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종목분석을 하려면 어느 정도 구체화된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럴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한 증권사의 제약·바이오 담당 애널리스트는 “막연한 기대감이 주가에 너무 심하게 반영돼 있다보니 목표주가를 설정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최근 네이처셀에 투자했다가 주가 급락으로 큰 손실을 봤다”며 “지금은 매수 시점이 아니라고 본다”고 조언했다. 네이처셀은 이달 16일 장 마감 후에 영국 FTSE지수에 편입됐다. 이때 6만원대에 들어간 외국인 투자자는 현재 큰 손실을 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