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ptocurrency(암호화폐) 라는 표현을 잘 안 쓰는 것 같다. 가상화폐, 암호화폐 등 많은 명칭이 있는데 그중 digital asset(디지털 자산)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시장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나는 cryptocurrency 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통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예로 들자면, 실용가치가 없다. 비트코인을 가지고 스타벅스 커피를 산다고 했을 때, 거래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아직까지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기존 통화로 사 마시는 커피 대비 두배 이상 비싼 커피를 비트코인으로 주문하고 결제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이미 커피는 식어버릴 것이다. 화폐는 어디서든 제약없이 거래가 이뤄져야 화폐라고 칭할 수 있다. 다만 영원히 통화로서 가치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14일 한국을 방문한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최고경영자(CEO)가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가상화폐는 당초 ‘virtual currency’로 불렸다. 실물 화폐가 아닌 화폐라는 의미에서였다. 일본 정부가 가상통화라는 한자어로 쓰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가상통화나 가상화폐라고 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가상화폐를 더 많이 쓰는데 정부는 공식적으로 가상통화라고 쓴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게임머니, 사이버머니, 포인트 등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암호화폐로 좁혀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블록체인 등 암호화 기술이 적용된 화폐라는 개념이다. 세계적으로도 ‘cryptocurrency’가 널리 쓰였다. 일부 국내 언론들은 ‘암호화폐'라고 쓰고 있다.
그러다가 이제는 ‘crypto asset’이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화폐, 통화(currency)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에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공신력 있는 곳에서는 ‘cryptocurrency’라고 쓰지 않고 ‘crypto asset’ 또는 ‘digital asset’이라고 쓴다. 한국말로 하자면 ‘암호화 자산', ‘디지털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불어닥친 가상화폐 열풍은 최근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는 여전히 과대평가돼 있다. 신기술이 도입되는 과정은 ‘기술촉발➝부풀려진 기대의 정점➝환멸➝계몽➝생산성 안정기'라고 한다. 아직 ‘환멸'까지 멀었다고 본다.
과대평가돼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앞으로 실제 화폐로 사용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미래에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지, 화폐로 사용가능할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은, 당분간은 화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할 수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가상화폐가 화폐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며, 사이버머니나 상품권처럼 보조적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데스크칼럼] 가상화폐, 투기 목적 거래 금지해야...ICO는 허용 필요 <2017. 12. 15>)
각국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발행할 수는 있다. 당연히 실물화폐와 1대1로 교환될 것이다. 영국, 캐나다, 스웨덴, 일본, 싱가포르, 네덜란드, 중국, 홍콩 등에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신력 있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와 가상화폐가 경쟁하면 사람들은 어느 쪽을 더 믿고 사용할까. 당연히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상화폐가 코인 공개(ICO)를 통해 자금 조달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 서비스 등 사업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또는 사업 성공 가능성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가상화폐들 사이에서 옥석가리기가 진행될 것이다. "2년 내 90% 이상의 ICO 회사가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리플은 국제송금에 특화된 기능으로 은행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비체인은 유통이력 추적 기능으로 자동차회사, 명품 브랜드, 와인 유통회사 등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탈중앙화 기술(블록체인)이 현실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사업 실체가 있어야 하며, 오히려 주체(중앙)가 필요한 것이다. 이더리움도 정부 기관, 기업 등과 2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가상화폐 시장에서 디지털 금 또는 디지털 달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에서는 코인을 사려면 달러화로 직접 살 수 없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먼저 사서 그걸로 다른 코인을 사야 한다. 가상화폐 시장 참여자들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의 위상을 계속 유지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암호화폐(cryptocurrency)'라고 하지 말고 ‘암호화 자산(crypto asset)’ 또는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이라고 하자. 필자는 앞으로 ‘디지털 자산'이라고 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