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뒤덮은 미세 먼지 상당수가 중국에서 왔음을 입증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춘제(春節·설) 기간 중국에서 사용된 폭죽 성분을 국내에서 검출해 '중국발(發) 미세 먼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특정 시기에 발생한 미세 먼지가 한국으로 유입된 것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에서 미세 먼지가 유입됐음을 보여주는 연구 성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정부의 미세 먼지 대책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증거가 없다'며 우리나라 정부의 중국발 미세 먼지 대책 요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춘제 폭죽 이정도입니다 - 국내 연구진이 20일 중국 춘제(春節·설) 기간 폭죽 사용으로 발생한 상당수의 미세 먼지가 국내로 유입됐음을 입증했다. 사진은 중국인들이 춘제를 맞아 폭죽을 터뜨리는 모습.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가스분석표준센터의 정진상 책임연구원은 20일 "중국에서 나온 대기오염 물질이 국내에 들어와 미세 먼지 농도를 높였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대기환경' 4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미세 먼지는 머리카락 굵기의 20분의 1 정도로 작아 기관지에서 잘 걸러지지 않아 각종 폐질환이나 염증을 일으킨다. 연구진은 폭죽이 터질 때 나오는 화학 물질을 실시간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춘제 기간인 지난해 1월 30일 대전 지역 미세 먼지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대기 중 칼륨 농도가 평소의 8배가량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칼륨은 폭죽이 잘 터지도록 하는 산화제로 쓰인다. 석탄 등 화석연료를 태웠을 때 발생하는 다른 물질의 농도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같은 날 대전을 포함해 전국 9개 도시의 미세 먼지 농도는 모두 '나쁨'(51~100μg/m³)을 기록했다.

연구진은 "같은 시기 국내에서는 대규모 불꽃놀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죽으로 발생한 미세 먼지는 중국에서 유입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보통 대기에 떠 있는 오염 물질이 중국에서 한국까지 오는 데 하루 정도 걸리기 때문에 지난해 1월 28일, 29일 터진 폭죽에서 나온 미세 먼지가 국내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도 춘제마다 폭죽으로 인한 미세 먼지 발생이 늘고 있다. 중국에서는 폭죽을 많이 터뜨릴수록 액운을 쫓고 복을 불러온다고 믿는 경향이 강해 설 연휴가 시작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꽃놀이를 한다. 중국 정부의 폭죽 제한 정책도 먹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춘제 기간인 1월 28일 베이징의 미세 먼지 농도는 75㎍/㎥에서 647㎍/㎥으로 늘었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25㎍/㎥)의 26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정진상 박사는 "특정 시기에 발생한 미세 먼지가 중국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동북아 미세 먼지 저감을 위한 중국과의 공동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발 미세 먼지 입증 연구 잇따라

해마다 미세 먼지로 인한 피해가 늘면서 국내의 미세 먼지가 중국에서 발생했음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도 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난 2016년 국내 미세 먼지에서 중국에만 있는 종류의 납 성분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납은 생산지에 따라 동위원소(원자 번호는 같지만 질량수가 다른 원소)의 비율이 달라지는데 국내에서 검출된 미세 먼지 속 납의 동위원소 비율이 국내에서 사용하는 납이 아닌 중국산 납과 거의 일치했다. 연구진은 납이 검출된 양을 토대로 국내에 유입되는 미세 먼지 속 중금속의 87%가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같은 해 환경부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공동 연구해 전체 미세 먼지 중 중국에서 유입된 비중이 34%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항공기와 지상 관측소를 동원해 각종 오염 물질 흐름을 추적해 얻은 결과였다. 위성 영상을 통한 기류 분석이나 대기 이동에 대한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중국산 미세 먼지가 국내로 유입된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었다.

지난해 3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는 중국에서 발생한 미세 먼지 때문에 2007년 한 해 동안 한국과 일본·몽골·북한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3만900명이 조기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가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도 119만명의 조기 사망자가 나온다는 결과였지만, 중국발 미세 먼지로 인한 국내 피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연구 결과가 이런데도 아직까지 미세 먼지 발생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