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시설에서 최고의 재배기술로 키운 최고급 장미. 로즈피아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대 화훼 소비국 일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2일 전북 전주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로즈피아를 찾았다. 농업회사법인은 기업적 농업경영을 통해 생산성 향상과 농업의 부가가치 향상, 영농의 편의 도모를 위해 설립된 법인을 말한다. 장미 선별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4620㎡(1400평) 규모의 화훼유통센터를 지나 1만2000㎡(약 4000평) 규모의 거대한 유리온실에 들어서자 장미 향기가 6월 제철을 맞은 것처럼 코끝을 간지럽혔다.
2000년 7월 설립된 로즈피아는 지난해 기준으로 매출 100억원을 올린 화훼 유통·수출 전문업체다. 주요 품목은 장미다. 계절에 따라 국화·백합 등도 취급한다. 최근에는 출자농가들이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재배하는 파프리카·토마토·당조고추 등의 과채류도 유통한다. 하지만 주 업무는 전주·장수·김제 등지에 있는 130여곳의 주주농가가 생산한 절화(줄기까지 자른 꽃)를 수거해 공동선별하고 포장해 출하하는 일이다.
정화영(60) 로즈피아 대표는 한국농수산대학을 나온 아들과 함께 전북 장수군에 위치한 최첨단 유리온실에서 장미를 생산하는 화훼재배농이자, 수출까지 전담하는 20년 경력의 화훼 전문가다.
그는 1988년부터 고향인 전북 장수로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해발고도가 높은 장수의 지역 특성을 고려해 고랭지 배추를 재배했다. 1993년 농어민후계자로 선정됐고, 다음해에는 5000㎡(약 1700평) 규모의 비닐온실에서 오이·고추·백합 등 다양한 시설작물로 재배품목을 다양화했다.
그는 1997년 시설하우스에서 경험한 화훼 재배를 거울삼아 장수군에서 처음으로 3만㎡(약 9000평) 규모의 유리온실을 만들었다. 정부 보조까지 받아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98년 IMF 경제한파로 위기를 맞았다. 기름값은 치솟는데 화훼 소비는 급감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1998부터 2000년까지 매년 4억∼5억원의 적자를 경험했다.
정 대표는 좌절하지 않고 해외에서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해외진출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무역상을 통해 수출을 시작했지만 농가들이 내야 하는 운반비 부담이 컸다. 정 대표는 물류비라도 아끼자는 생각에 전남, 전북에서 장미를 재배하는 8개 농가를 설득해 전북 임실에 농산물 유통을 전담하는 농업회사법인 로즈피아를 세웠다.
로즈피아는 2010년 정부의 원예브랜드화사업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전주로 둥지를 옮겼다. 설립초기 8곳에 불과했던 참여 농가도 지금은 130여 곳으로 확대됐다.
해외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엿본 정 대표는 2012∼2013년에는 일본 시장 공략에 역량을 집중했다. 정 대표는 “장미 품질을 100% 책임질테니 가격을 보전해 달라고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원하는 바를 얻었다”고 말했다. 최고 품질의 상품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장미 재배기술도 축적했다.
정 대표의 도전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나이가 적지 않지만 화훼 재배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아직도 화훼 선진국 네덜란드를 찾는다. 지역 농민사관학교에서 진행하는 화훼 교육을 받기도 하고 재배 기술이 우수하다는 농가도 찾아 노하우를 배우기도 한다.
정화영 로즈피아 대표(사진)는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화훼 내수시장이 얼어붙어 2017년만큼 화훼업계가 힘들었던 때가 없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재배기술을 확보한 만큼 수출 시장을 적극 공략해 활로를 모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화영 대표와의 일문일답.
-로즈피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IMF를 경험하면서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탄생했다. 공동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면 개별농가가 수출할 때보다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 또 해외 판매처도 함께 개척할 수 있고, 공급 능력도 커지기 때문에 시장 교섭력이 강화되는 등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IMF 금융위기 때보다 지난해에 훨씬 어려웠다고 했는데.
“한국은 꽃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해외 선진국과 달리 선물의 성격이 강하다. 그 때문에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되자 큰 타격을 입었다. 화훼 재배농들끼리는 국내 화훼소비가 ‘꽁꽁 얼어붙었다’고 자조했을 정도다. 설상가상,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으로 중국 수출길도 막혔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서 엔화 가치가 상승했는데 그 영향으로 일본으로의 수출도 예년만 못했다. ”
-지금 상황은 좀 나아졌나.
“중국과의 사드 문제는 어느 정도 봉합이 되는 분위기다. 특히 중국의 경제력이 급성장하고 있어 앞으로 한국산 화훼에 대한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 진출 경험을 살려 처음부터 프리미엄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고품질 화훼를 수출할 계획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로즈피아의 스프레이 장미(하나의 꽃대에서 여러송이의 꽃이 피는 형태)가 인기다. 화훼 수출이 안되는 때를 대비해 파프리카나 토마토 같은 열매 채소로 수출 품목도 확대하고 있다. 이들 품목의 경우 화훼를 키우던 유리온실에서 키울 수 있어 추가 자금이 많이 들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중요할 것 같은데 로즈피아의 가격 경쟁력은.
“로즈피아가 과거 공략했던 중저가 화훼시장에서 한국산 화훼 가격 경쟁력은 에콰도르나 케냐산보다 못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스프레이 장미를 일본 프리미엄 화훼시장에 수출하고 있는데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본산과 거의 비슷한 가격대에 거래된다. 일본의 경우 생산인구가 고령화하면서 화훼 재배 면적이 축소됐고, 부족한 부분을 수입으로 대체하고 있다. 로즈피아는 일본 수출 경험이 있는 만큼 수출 규모도 자연히 늘어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화훼 재배가 돈이 되는가.
“주변에 대를 물려 화훼를 재배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우리 아들도 나와 함께 장미를 키운다. 비전이 없다면 다른 일 하라고 말리지 않았겠는가. 화훼 재배는 유리 온실 등 초기 설비 투자에 상당히 많은 돈이 든다. 1ha(3000평)당 30억원쯤 드는 것 같다. 그래도 화훼농끼리는 ‘15년만 버티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 기간이면 정부 융자금에 대한 이자(3% 수준)를 내면서 원금도 모두 상환할 수 있다. 융자금을 갚고 난 뒤에는 생산비와 물류비 등을 제외하면 모두 농장주의 순이익이다.”
-로즈피아만의 기술경쟁력을 꼽자면.
“로즈피아는 화훼 습식유통(절화수명연장제를 넣은 물에 꽃대를 담가 유통하는 방식)의 선두주자다. 건식유통과 비교하면 노동력과 비용이 곱절 이상 들지만 품질 향상을 위해 회사 설립 이후 습식유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화훼공판장이 주최한 ‘잘 피고 오래가는 꽃 콘테스트’에서 전국 베테랑 화훼농가들이 출품한 장미 절화 67점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수상경력이 많은 것 같다.
“대한민국 화훼산업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농장의 성공을 위해서 분주했다. 그 결과 장수군민의장 산업공익장을 수상했다. 로즈피아 대표를 맡은 이후로는 300만달러, 500만달러, 1000만달러 수출탑과 금탑산업훈장, 농림부 농림축산물 수출탑 등의 상도 받았다.”
-한국 화훼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신 품종을 만들어내는 육종은 재배 기술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농가에서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가 우수한 품종 육종에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이유다. 화훼는 외국산 품종을 주로 수입해 사용하는데 유행 주기가 3~4년으로 짧다. 그래서 신품종을 들여올 때마다 로열티가 많이 든다. 예를 들어 장미 한 송이를 키울 때 드는 비용을 100원이라고 하면 5원이 로열티다. 농진청 등의 기관에서 신품종을 개발하는 덕분에 수입 품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서 70%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로열티 비중이 높다.”
-올해 다짐이 있다면.
“꽃은 아름답지만 꽃을 생산해 파는 일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힘든 노동이다. 그래도 17년 동안 로즈피아라는 이름을 내걸고 화훼 유통·수출이라는 한우물을 팠다. 그 세월이 지금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는 더욱 적극적으로 해외사업을 추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