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불과 10년전만해도 새벽에 들에 나가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일해야 하는 전형적인 3D(더럽고·힘들고·어려운) 직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IT(정보과학기술)·BT(바이오기술)·ET(환경기술) 등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도시생활할 때보다 스트레스는 덜하고 돈도 되는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라승용 농촌진흥청장이 20일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래 농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라승용 농진청장은 20일 전북 전주 농촌진흥청에서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농사일로 평생을 보낸 농촌 부모들은 과거 자식들이 농사 대신 여름철 시원하고 겨울철 따뜻한 사무실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골에서도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생각에 귀농을 말리는 이들이 크게 줄었다”며 농업의 변화된 모습을 설명했다.

농업은 라승용 청장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다. 라 청장의 어머니는 지금도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는다. 자신도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농림부 국립생사검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공무원이 된지 20년이 훌쩍 지난 뒤 전문 지식을 얻기 위해 고려대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농진청 차장을 끝으로 농진청을 떠났던 그는 청장으로 복귀한 이후 농업이 한국의 미래산업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뼈속부터 농업과 관련이 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농업에 애착이 많은 라승용 농진청장을 만나 한국 농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귀농·귀촌이 증가하고 있다지만 아직 한국에서 농업은 힘든 직업이라는 인식이 많다. 한국 농업에 비전이 있다고 보는가.

“한국에는 반도체나 휴대폰 같은 최첨단 IT 산업을 비롯해 자동차, 철강, 조선 같은 중공업 산업 등 다양한 산업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직 이들 산업이 한국의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농업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농부 입장에서는 머리를 제대로 쓰면 농업도 돈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막연히 농업이 중요하다는 말만 믿고 귀농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올해 상반기 대한민국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서면 먹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해 좋은 농산품을 비싸게 주고 먹고 살 소비층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다.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많은 미국이나 EU, 일본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아직까지 별 다른 문제가 없었던 한국도 식량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농업의 미래가 밝다는 얘기다. 투자회사 로저스홀딩스의 수장 짐 로저스도 같은 맥락의 얘기를 했다.”

-최첨단 기술에 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 회사 CEO가 농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니 의외다.

“‘투자의 귀재’로 평가받는 짐 로저스 회장은 2014년 서울대 경영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여러분이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 농대로 가라’고 했을 정도로 농업의 비전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2017년 가진 강연에서도 “앞으로 한국에서 가장 각광받을 수 있는 미래 산업은 농업’이라고 단언했다.”

농진청 연구원들이 미래 바이오 소재로 활용 가능한 종자를 살펴보고 있다.

-과거 한국 농업의 개념과 미래 한국 농업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인가.

“과거 한국의 농업은 먹고 살기 위한 식량 안보의 측면이 강했다. 이런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식량안보 못지 않게 산업의 측면이 부각될 것이다. 농업이 돈이 되는 시대가 목전이다. 가깝게는 한국 소비자들이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근본을 알 수 없는 수입 농수산물보다는 국산 먹거리가 훨씬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공학, IT 기술이 접목돼 질좋은 농산물을 국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생산하면 해외에 수출할 수도 있다. 미국이 쇠고기·콩·밀을 적극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배경도 국내에서 소비하고도 남아돌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신기술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내가 ‘농업은 미래산업이자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배경 중 하나다. 요즘 농업은 최첨단 기술의 융합체다. 종자를 개량하는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은 기본이다. 편하게 일을 하기 위한 농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계공학이 필요하다. 키우는 채소와 가축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주목받는 스마트 팜은 IT기술이 접목된 것이다. 대기·수질·폐기물·토양·해양 등의 오염 예방과 소음 및 진동공해 방지 등을 위한 환경공학도 농업과 밀접한 분야다.”

농진청 직원이 스마트팜을 도입한 농가에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왼쪽). 농부가 스마트폰으로 온실 환경을 바꾸고 있다(오른쪽).

-스마트 팜이 주목받고 있는 것 같긴하다. 농업에 IT기술의 접목되면 어떤 점이 좋은가.

“우선 노동시간이 줄어 여유 시간이 많아진다.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 적지 않은데 큰 규모로 농사를 짓는 친구들은 정말 바쁠 때를 제외하면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닌다. ‘농부는 바쁘게 살아야지 게으르면 쫄딱 망한다’고 했는데 옛 이야기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농작물이나 가축은 살아있는 생물이어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했지만 IT기술을 접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스마트 팜을 도입하면 적당히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원거리에서도 온실과 축사를 살펴볼 수 있다. 굳이 현장에 갈 필요가 없이 스마튼 폰 조작으로 온도를 조절하고 먹이와 물을 줄 수 있다. 최적의 생육, 성장조건을 맞출 수 있어 생산성은 높아진다. 편해지면서도 돈도 되는 것이다.”

-고령화된 농촌 어른신들이 이런 첨단 기술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첨단 기술을 이해하고 실제 이용할 수 있는 청년 농부들이 많아져야 할 것 같은데.

“최첨단 기술과 기계가 보급돼도 연세가 많은 농부들은 육체노동을 통해 농사를 짓는다. 사실 새로운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려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나이가 많은 농부들은 제대로 활용하기 쉽지 않은 데에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다르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안다. 정부가 청년농부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정부는 이달말까지 농사를 짓겠다는 젊은이 1200명을 뽑아 첫해 매달 100만원, 둘째해 매달 90만원, 셋째해 매달 80만원 등 3년간 생활비를 지원한다. 앞으로 예산이 확대되면 수혜 대상도 늘어날 것이다. 입학혜택이 파격적인 농수산대학도 청년농부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 산물의 하나다. 3년제 농수산대학에 들어가면 학비가 전액 무료다. 첫해는 이론을 배우고 둘째해에는 전공에 따라 농장으로 실습을 나간다. 마지막 해에는 생산한 농산품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지에 대한 마케팅 등 경영학을 배운다. 생산 뿐만 아니라 판매까지 배울 수 있다. 6년간 영농에 종사하거나 농산업체에 근무하면 군복무가 대체된다. 학생들이 몰릴 수 밖에 없다. 지난해 경쟁률이 3.7대 1이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농업도 다양한 분야가 있다. 추천할만한 농업이 있다면.

“꼭 찝어 이 분야가 유망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기존에 있던 농업이라도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성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쌀 농사만 생각해봐도 친환경 유기농 검은쌀은 1kg에 만원이지만 잘 팔린다. 80kg 한 가마면 80만원이다. 친환경 유기농 쌀을 재배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같은 무게의 일반 쌀이 15만원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도전해볼만하다. 곤충산업도 유망하다. 곤충 산업은 이미 대중화가 시작됐다. 한국 곤충 시장은 2017년 8000억원 규모였지만 2020년에는 2조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곤충은 학습용, 사료용, 식용, 방화(화분수정)용, 방제용, 위생환경용, 의약용까지 그 용도가 무궁무진하다.”

가축용 사료로 개발된 동애등에. 사진은 농진청의 기술을 지원받아 CIEF가 대량 사육에 성공한 동애등에.

-예비 귀농인에게 조언이 있다면.

“농촌 사회는 아직까지 배타적인 성향이 남아 있다. 귀농하려는 지역에 동화돼 구성원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도시처럼 파편화돼서 살 수 없다. 돈 들여 논밭 사고, 유리온실 짓고, 축사 만들어 귀농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귀농하려는 지역을 고르면 정착하기 전에도 자주 내려가 사람을 사귀여야 한다. 또 귀농한 뒤에는 번거롭고 힘들 수 있지만 일손도 도와주고 정도 나눠야 한다. 그러려면 미리 간단한 기술을 배워두는 것도 좋다. 목수 기술과 전기기술 등을 배워두면 기술자 대접을 받으며 농촌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