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커제 9단이 내년 봄 중국 IT(정보기술) 기업 텐센트가 개발한 인공지능(AI)과 바둑 대결을 펼친다. 내년 4월 중국에서 개최되는 '세계 AI 바둑 토너먼트'의 일환으로 열리는 경기다. 커제는 지난 5월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에 패한 뒤 "다시는 인공지능과 바둑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를 번복했다. 중국의 기술력을 해외에 알리겠다는 의도다.
중국의 AI 산업이 최강국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30년 미국을 제치겠다고 선언하고 작년부터 연 6조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여기에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의 약어)로 불리는 중국 대표 테크 기업들도 집중 투자에 나서면서 시장 규모가 올해 100억달러(약 11조3000억원)로 성장했고 2020년에는 245억달러(약 26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중국 기업이 지난해 출원한 AI 관련 특허 등 지적 재산권은 2만9023건에 달한다. 미국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는 "중국은 세계 디지털 정보의 13%를 확보하고 있고, 2020년이면 세계 인공지능 시장의 25%를 장악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의 AI 굴기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테크 '빅3'는 거대한 시장을 기반으로 인터넷 검색, 전자상거래, 게임·소셜 미디어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AI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AI를 이용한 자율주행과 안면 인식,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분야를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넷 업체 바이두는 지난 3년간 관련 미국 기업 인수에만 10억달러(약 1조700억원)를 썼다. 바이두가 개발했거나 시험하고 있는 AI 관련 기술만 해도 60가지가 넘는다. 지난 6월에는 중국 테크 기업, 포드·다임러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과 손잡고 AI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차 '아폴로' 개발에도 나섰다. 바이두의 자율주행차 기술은 미국 구글이나 우버 등에 견주는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향후 3년간 AI 개발에 150억달러를 투자하고, 미국·러시아 등 5국에 인공지능 연구 기관을 설립할 예정이다. 텐센트도 지난 5월 미국 시애틀에 인공지능 연구소를 설립하고, 미국 주요 IT 기업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있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늦게 AI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상용화에서는 미국을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의 강력한 제조 기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페이스++는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의 얼굴을 인공지능으로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각종 행사장 보안 감시에 활용하고 있다. 먼 거리에서도 걸음걸이와 얼굴을 정확하게 인식해 사람을 구분한다. 알리바바는 지난 2015년 이 기술을 스마트폰 결제에 도입했고, 중국 최대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도 이 기술을 통해 운전자 신분을 확인한다. 중국 공안은 순찰차에 이 기능을 탑재해 반경 60m 내 범죄 용의자를 찾는 데 활용하고 있다.
◇정부 전폭적 지원… 기업들은 인재 영입에 사활
중국의 AI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8월 '2030년 미국을 제치고 AI 분야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인공지능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인공지능 산업을 1조위안(약 165조원)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인공지능을 실물경제와 융합해 국가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AI 개발의 필수 요소인 빅데이터와 수퍼컴퓨터에서 세계 최고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기준 세계 상위 500대 수퍼컴퓨터 중 202대를 보유해 미국(143대)을 크게 앞섰다. 세계에서 연산 속도가 가장 빠른 수퍼컴퓨터도 중국이 개발했다. 게다가 중국의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는 7억명이 넘는다. 이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면서 만들어진 빅데이터는 인터넷 기업 서버에 고스란히 쌓이고, 기업들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화된 인공지능 서비스를 개발한다.
중국은 전 세계 인공지능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도 하다. 바이두의 경우 인공지능 핵심 분야인 머신러닝(기계 학습) 전공 과학자에게 미국 구글이나 애플보다 많은 22만달러를 기본 연봉으로 주고 있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개인 정보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는 것도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유리한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