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인사동 SM면세점은 한산했다. 1층 럭셔리 패션 매장에는 '40% 시즌 오프 행사' 안내판이 보였지만 손님은 대여섯에 불과했다.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에서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 관광을 왔다는 왕시판(王曦帆·33)씨 부부는 2층 화장품 매장을 둘러보며 "브랜드가 너무 적고 럭셔리 상품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롯데와 신세계면세점으로 가겠다며 매장을 떠났다. 시계·선글라스와 주류 등을 판매하는 3~4층 매장은 층마다 손님이 서너 명 정도 보였다. 주차장에는 대형 버스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비슷한 시각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 12층 화장품 코너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 관광객 수백 명이 몰려 북적였다. 디올과 입생로랑, 설화수 판매대 앞에는 수십 명이 줄을 섰다.

국내 여행업계 1위인 하나투어가 2015년 중견·중소기업 몫의 사업권을 따내 설립한 SM면세점이 매출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면세점이 고객을 끌어들이는 핵심 상품인 명품 브랜드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드 관련 경제 보복의 직격탄까지 받은 것이다. 손님 감소와 실적 악화, 이에 따른 매장 규모 축소라는 악순환에 빠졌다.

1~3분기 영업손실 230억원, 손실 폭 더 커질 듯

SM면세점은 "매장 면적의 절반 이상을 국내 중소기업 우수 제품으로 구성하고, 인사동 전통문화 상권을 활용하는 전략에 성패를 걸겠다"며 지난해 4월 문을 열었지만, 지금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3분기에만 53억원 영업손실을 봤다.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230억원. 이런 추세라면 올해 손실은 지난해(279억원)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사드 보복 여파로 고전하다 3분기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롯데나 신라 등 기존 면세점은 물론, 신세계와 HDC신라 등 신규 면세점과도 다른 상황이다.

경쟁력 못 갖추고 시장 진입 '무리수'

면세점 업계 관계자들은 SM면세점의 부진은 예견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나투어가 국내 여행업계 최강자이지만, 명품을 확보하는 소싱(sourcing) 능력과 재고 관리 능력, 원가 경쟁력 등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면세점 시장에 무리하게 진입했다는 것. 면세점은 자신이 물건을 사서 팔아야 한다. 즉 재고를 책임지고 장사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에 위험 부담이 크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기업의 시장 독식을 막겠다며 무리하게 중소기업을 시장에 참여시켰고, 하나투어는 여기 편승했다가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여행사에 지급하는 송객 수수료가 많아진 것도 부담이다. 중국 단체 관광객 발길이 뚝 끊기자, 이를 만회하느라 모객(募客)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면세점일수록 더 높은 수수료를 제시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 가이드는 "관광객을 SM면세점에 데리고 가면 '왜 대형 면세점에 가지 않느냐'며 불만을 터뜨리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하나투어의 성장 동력 아닌 애물단지"

면세점과 여행업계에서는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과 최종윤 SM면세점 대표 등 최고경영진의 경영 능력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면밀한 분석 없이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고,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뚜렷한 타개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투어 내부에서는 "SM면세점이 하나투어의 성장 동력이 아니라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SM면세점은 현재 1~4층에서 운영하는 면세점 영업 공간을 더 줄여 두 층만 쓰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투어는 지난 8월 SM면세점 보통주에 대해 50% 비율로 감자(減資)를 결정하기도 했다. 면세점 사업 부진에 따른 결손금을 정리하려는 조치로 알려졌다.

SM면세점 관계자는 "화장품과 패션 잡화 상품을 더 강화하고, 외국인 개별 관광객이 즐길거리도 늘리겠다"고 말했다. 최근 고급 시계와 액세서리 매장이 있던 지하 1층을 체험형 실내 놀이 시설로 바꿨고, 면세점 옆에서 지방 관광지로 출발하는 'K 트래블 버스'도 활성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