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상화폐 기업자산으로 인정할듯...기준서 이달 발표예정
미국은 '파생상품'이라는데...한국은 명확한 기준없어
불법 성인사이트 운영자...구속 5개월간 비트코인 가치 30억원 늘어
‘통화냐, 파생상품이냐.’
가상화폐 규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비트코인 회계처리 기준도 주목받고 있다.
가상화폐 선진국인 일본 정부는 올해 초 사실상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 이전까지 물건으로 취급해 소비세를 부과했으나 지난 7월1일부터는 세법 개정을 통해 소비세도 폐지했다. 가상화폐를 ‘통화’의 범주에 집어넣은 것이다.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오는 18일부터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허용키로 했다. 세계 최대 파생상품거래소 CME 상장은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을 의미하는 것이라 투자자들의 관심이 고조됐다. 미국은 가상화폐를 ‘상품’의 범주로 본 셈이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가상화폐는 자본시장법상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국내에서 거래는 불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증권사들에게 전달했다.
미국에서도 비트코인 선물거래 허용을 우려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토마스 피터파이 인터랙티브브로커즈 회장은 "비트코인 선물거래는 자살행위"라고 언급하며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 위원장에 발송했다.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전체 경제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거래소 자체가 파산할 정도로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기존 거래소와 완전히 격리되지 않는 한 가상화폐 선물옵션 거래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 ‘통화’ or ‘파생상품’ 여부 따라 회계기준 달라져
가상화폐를 ‘통화’로 볼 것인지, ‘파생상품’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회계처리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을 따르는 우리나라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유동자산으로 분류한다.
반면 파생상품은 회계처리기준이 매우 복잡하다. 파생상품은 같은 상품이라 하더라도 투기거래인지, 위험회피인지 목적에 따라 회계처리를 다르게 한다. 회계기준서 1039호(금융상품, 인식과 측정)에 따라 투기거래 목적이라면 바로 자산으로 잡지 않고, 평가손익에 따라 금융부채 또는 금융자산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회계처리기준에 대해서도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IFRS를 따르지 않고 자체 회계기준위원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신속한 판단이 가능하다.
일본회계기준위원회(ASBJ)는 지난 23일 가상화폐를 기업자산으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논의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기업회계원칙 기준서를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명확한 회계기준이 없다. IFRS를 따르는 우리나라는 IFRS가 명확한 기준을 내려주기 전까지 한국회계기준원이 독단적으로 판단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명확한 기준 없이 국내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비트코인을 당좌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라샤드 압델칼릭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회계학 교수는 "IFRS에서도 비트코인 관계자들을 만나 의논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회계기준 반영여부는 상당히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은 비트코인을 유동자산 내 당좌자산으로 분류해 놨다. 빗썸을 운영하는 비티씨코리아닷컴은 2015~2016년 지성회계법인, 2017년 대현회계법인을 통해 외부감사와 실사를 받았는데, 전자화폐라는 계정으로 당좌자산 처리했다.
당좌자산은 현금·주식과 같이 1년 내 현금으로 바꿀 수 있고 돈이 얼마가 들어올지 측정이 가능할 수 있는 자산이어야 한다. 또 공정한 방법에 의해 평가돼야 한다. 상품·제품·원재료 등 복잡한 판매과정을 거쳐야 현금화가 가능한 재고자산보다 환금성이 높다.
빗썸은 2015년에는 1비트코인의 가격을 50만6000원으로 적용해 유동자산을 평가했다. 2016년에는 119만2000원으로 처리, 자산가치가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달 6일에는 약 1591만원에서 거래됐다. 2년도 안돼 자산가치가 약 32배 가량 불어난 셈이다.
◆ 한국은 명확한 기준없어...빗썸 자산 2년간 32배 폭등
전문가들은 가상화폐를 기업자산으로 인정하려면 비트코인 가치가 실제 자산성이 있는지부터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빗썸 거래소 내에서의 거래가격이 장부상 적정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 공정한지, 또 측정 가치가 명확한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좌자산은 유동부채와 통상 연결돼 있는데, 1년안에 지금의 가격으로 부채를 갚을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법무부가 법무실·검찰국을 중심으로 가상통화 대책 전담팀(TF)을 발족하는 등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을 기업자산으로 인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가상화폐를 금융시장으로 보지 않고 자금세탁, 탈세, 소비자 보호 등의 관점에서 규제하기로 했다.
지금처럼 비트코인이 폭등하는 시기엔 상장사들이 비트코인을 통해 자산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용도로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일부 상장사가 비트코인을 당좌자산으로 분류, 자산을 부풀린다면 투자자 입장에선 이 기업이 당장 현금화를 통해 부채상환 능력이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법원은 지난 9월 5억원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전자파일’로 규정, 몰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성인사이트 운영자인 A씨가 유료회원들에게 216 비트코인(올해 4월17일 기준 5억원)을 수수료로 받았지만 법원은 “현금과는 달리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로 돼있어 몰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몰수대상에서 제외된 A씨의 비트코인 가치가 8개월도 안돼 34억원으로 뛰었다는 점이다. A씨는 구속 상태라 비트코인을 팔수가 없었는데, 그 사이 가치가 7배나 올랐다. 검찰이 추징한 A씨의 재산은 3억원. 하지만 A씨는 비트코인으로 34억원을 번 셈이다.
객관적 기준가치가 없고 불법인지 합법인지조차 규정되지 않은 비트코인을 공정한 가치에 따른 자산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학계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정순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상통화는 발행인이 존재하지 않아 지급책임을 기초로 이뤄지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에도 해당하기 어렵다”며 “법원의 판결 등을 기초로 판단하면 강제통용력이 인정되는 법화로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