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 전문가들은 포항의 지역 발전소가 ‘포항지진’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직접적인 원인은 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한국지구물리·물리탐사학회,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 대한지질공학회 공동으로 연 긴급포럼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포항지진에 지열발전소가 미친 영향을 검증하려면 폭넓은 연구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이날 ‘포항지진의 원인, 효과 그리고 향후 전망’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유체 유입(지열발전의 경우 물 주입)에 의한 ‘유발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미국 오클라호마 지역의 사례를 포항지진과 비교했다. 오클라호마 지역은 규모 3 이상의 지진이 1년에 한차례 정도 발생하는 지역이었지만 셰일가스 채굴 후 규모 3 이상의 지진이 매년 900회 가량 발생하는 곳으로, 지질학계에서 유체 유입에 의한 유발지진 연구의 주요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포항지진 본진(빨간색)과 여진(노란색) 분포.

홍 교수는 “포항 지역 지열발전소의 경우 지금까지 누적 약 1만2000㎥의 물이 주입됐고 배출량을 빼면 약 5000여㎥의 양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오클라호마 지역은 약 2000만㎥의 물이 주입돼 단순히 비교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이번 포항지진처럼 규모 5.0 이상의 중대형 지진이 유체 유입에 의해 일어나려면 수년 동안 상당량의 물이 주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또 “보통 규모 5.0의 지진이 한차례 일어나려면, 지진에 앞서 규모 4.0의 지진이 10회, 규모 3.0의 지진이 100여회 발생해야 하는데 이번 포항지진은 그런 전조가 없었다”며 “지열발전소가 포항지진을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태섭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규모 5.4의 지진이 유체 유입으로 발생하려면 수백만 톤에 해당하는 양이 주입돼야 하는데 포항 인근 지열발전소에는 지금까지 수천~수만톤의 물이 주입된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지열발전이 포항지진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이진한 고려대 교수는 “지열발전이 단층과 응력에 영향을 줘 지진 발생을 빠르게 한 트리거 역할은 했을 것”이라며 “유체 유입의 경우 짧은 기간에 빨리 물이 주입될 경우 유발지진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 지질에 대한 정확한 조사 없이 지열발전소 등을 짓는 행위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측하지 못한 강한 규모의 지진이 포항에서 발생함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서 경주지진이나 포항지진과 유사하거나 강한 지진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홍태경 교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후 울릉도는 5cm, 백령도의 경우 2cm 동쪽으로 이동하며 지반 암석의 강도가 낮아졌다”며 “규모 5.0 이상 지진으로 보면 1978년에서 2011년까지 약 33년 동안 총 5회 발생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번 포항지진까지 6년만에 총 다섯 차례나 발생했다”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반도의 지각이 불안정해졌고 경주지진과 포항지진으로 생긴 응력(지각에 작용하는 힘)이 지진으로 해소되면서 다른 단층이나 지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기상청과 공동으로 포항지진의 발생위치와 단층의 움직임, 발생깊이 등을 정밀 분석한 결과를 23일 저녁 발표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포항 지진의 본진 위치는 기존 기상청이 발표했던 지점에서 남동쪽으로 약 1.5㎞ 떨어진 위도 36.109°N, 경도 129.366°E 지점으로 최종 확인됐다. 지진 발생 깊이는 9km로 발표됐지만 정밀 분석 결과 3~7km 깊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주지진과 포항지진으로 지진은 한반도에서 현재 절박한 현실 문제가 됐다”며 “지진을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심도깊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