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차 유리 현상(windshield phenomenon)'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밤에 운전하고 나면 자동차 앞 유리가 날벌레 사체로 가득했는데, 요즘에는 어찌된 일인지 유리가 깨끗하다는 것이다. 갑자기 곤충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레드바우드대의 한드 드 크룬 교수 연구진은 지난 18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지난 27년간 독일에서 곤충 개체 수가 75%나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곤충 네 마리 중 세 마리가 사라졌으니 차 유리가 멀쩡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7년간 곤충 4분의 3 사라져

독일 크레펠드 곤충학회의 아마추어 과학자들은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북서부 자연보호구역 63곳에서 해마다 곤충을 채집했다. 이들은 지상 1m에 설치한 천막 모양 덫에 알코올이 든 병을 넣고 날아다니는 곤충을 유인했다. 연평균 채집량은 매년 6%씩 떨어져 27년간 75%가 감소했다. 특히 곤충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름에는 무려 82%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유럽 초원에 사는 나비 개체 수가 수십 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연구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나비뿐 아니라 벌·나방·등에·모기 가리지 않고 날아다니는 곤충은 모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벌로 자주 오인되는 등에는 파리목(目) 곤충이지만, 꽃가루받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89년 조사에서 143종 1만7291마리의 등에가 채집됐지만, 2014년에는 104종 2737마리만 잡혔다.

과학자들은 이번 결과를 두고 일제히 '생태계의 아마겟돈'이나 '제6의 대멸종'을 알리는 전조(前兆)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곤충이 사라지면 생태계 먹이사슬이 무너진다. 곤충은 지구 생명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은 1962년 저서 '침묵의 봄'에서 농약 남용으로 새 먹이인 곤충이 사라지면서 봄이 와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카슨의 예측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 날벌레를 주로 먹는 제비나 칼새, 종다리가 급감했다.

벌이나 나방, 등에, 딱정벌레가 사라지면 식물은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한다. 야생화뿐 아니라 농작물도 바로 피해를 본다. 또 곤충은 작은 해충을 잡아먹고 동물 사체를 분해해 인간의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드 크룬 교수는 "이번 결과는 자연이 잘 보존된 보호구역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 우려된다"며 "도시나 농작지 주변에서는 곤충 감소가 더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꿀벌 실종 부른 살충제가 원인?

그렇다면 곤충들은 왜 사라졌을까. 독일 아마추어 과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곤충을 채집하면서 보호구역의 지형이나 날씨 변화도 기록했다. 날씨는 일시적으로 곤충이 급증하거나 급감하는 원인은 됐지만 27년에 걸친 장기간의 감소는 설명하지 못했다. 지형 변화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농업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과거에는 농지 주변에 야생화로 담을 둘렀지만, 최근에는 거의 사라졌다. 곤충들이 꽃가루와 꿀을 구할 곳이 줄어든 것이다. 농지가 늘면서 살충제 사용이 늘어난 것도 곤충에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요인이다.

특히 최근 전 세계에 걸쳐 꿀벌을 사라지게 만든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살충제는 씨앗에 적셔 사용해 환경에 피해가 적다고 알려져 있다. 또 꿀벌이 살충제를 맞아도 죽지 않을 만큼 독성도 적어 사용량이 늘었다.

하지만 지난 2월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연구진은 단독 생활을 하는 말벌이 극미량의 네오니코티노이드에 노출되면 짝짓기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영국 서섹스대 연구진은 네오니코티노이드가 꿀벌이 길을 찾거나 동료와 의사소통하는 능력도 크게 훼손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집을 못 찾고 사회생활이 차단되고 후손도 낳지 못하면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다. 곤충이 사라지면 그다음 차례는 인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