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200 차트(앨범) 7위, 핫 100 차트(싱글) 67위, 스포티파이(Spotify·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US 톱 50 차트 34위…’

한국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하 BTS)이 최근 미국 시장에서 거둔 성적이다. 빌보드 200 차트·스포티파이 톱 50 차트에서 한국 가수 역대 최고 순위에 올랐고,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선 솔로 가수를 뺀 케이팝(K-pop) 그룹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지난 9월 18일 새 앨범 ‘LOVE YOURSELF 承-Her’를 발표한 후 케이팝 역사를 새로 썼다.

세계 음악 산업의 중심지이자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BTS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 빅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차트메트릭(Chartmetric)의 조성문 대표는 “데이터를 보면 사운드클라우드(음악 유통 플랫폼), 스포티파이 등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포착된다”며 “영어권 팬을 효과적으로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좋은 음악, 훌륭한 퍼포먼스라는 기본기에 영리한 전략이 더해졌다는 설명이다.

팰로앨토 차트메트릭 사무실에서 만난 조성문 대표.

조 대표는 아티스트의 인기도를 측정·예측하려면 종합적인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엔 앨범 판매량만 집계하면 됐지만 음악 시장이 스트리밍 채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데이터가 곳곳에 흩어져 집계가 어려워졌다는 것. 앨범 성공 법칙도 바뀌었다. 발매 직전 대규모 마케팅을 벌이는 것보다 꾸준하게 팬과 소통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게임빌 창업멤버이기도 한 그는 UCLA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치고 실리콘밸리 IT 공룡 오라클에서 일하다 2015년 가을 차트메트릭을 창업했다. 차트메트릭은 특정 가수의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순위, 소셜미디어 인기도 등을 한꺼번에 분석해 그래프로 제공한다. 지난 1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뮤직 테크 서밋 스타트업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기술력도 인정받고 있다.

조 대표는 실리콘밸리 최대 한국인 네트워크 ‘베이 에어리어 K 그룹(Bay Area K Group)’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블로그)’, ‘테크니들(IT 전문 인터넷 미디어)’을 운영하는 이야기꾼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달 21일 팰로앨토 차트메트릭 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 BTS, 앨범 출시 전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성공 가능성 포착

-요즘 핫한 BTS 데이터 분석 결과가 궁금하다.

“차트메트릭으로 BTS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보인다. 애플뮤직, 유튜브, 스포티파이, 페이스북 등 다른 어떤 채널보다 먼저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큰 점프가 있었다. 정규앨범 발표(18일) 전인 9월 1일(현지시각)에 ‘2U’라는 커버 곡(다른 사람의 노래를 자신의 방식대로 부르는 것)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는데, 이 곡 발표 후 사운드클라우드에서 BTS의 팔로어가 크게 늘었다.

영어 곡인 2U로 영어권 사용자가 많은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먼저 버즈(buzz·화제)를 일으켰다. 곧 출시될 정규앨범에 대한 영어권 팬들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증폭시킨 셈이다. 사운드클라우드 운영을 무척 잘하고 있다.”

음악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차트메트릭’ BTS 페이지.

-유튜브는 어땠나.

“BTS 유튜브 채널의 경우 영상 조회 수 그래프 파장이 점점 커지는 걸 볼 수 있다. 일회성으로 반짝 뜨고 진 아티스트가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사랑과 주목을 받는 아티스트란 의미다. 이번 앨범이 발표된 18일에 조회 수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팬이 가장 많은 지역은.

“페이스북 팬 분포도를 살펴보면 필리핀 팬이 제일 많다. 한국이 두 번째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와 남미, 미국 등에서 폭넓게 인기를 얻고 있다. 다른 케이팝 가수들의 경우 주로 한국과 동남아 중심으로 팬층이 형성돼 있다.

BTS 팬 중에서 필리핀 팬이 가장 많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전파 경로를 분석한 논문이 있는데, 요약하면 필리핀이 글로벌 확산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케이팝에 익숙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쓰며 미국 등 세계 곳곳에 거주하고 있다.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BTS와 미국 톱 아티스트의 인기도를 비교한다면.

“BTS 스포티파이 인기도 지표를 보면 최근 점수가 92점인데, 미국 톱 가수인 아리아나 그란데(Arianna Grande) 점수(90점)보다 높다. 이 점수는 최근 한 달간 스트리밍 숫자가 많이 나와야 올라가는 점수다. 대단한 팬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남미, 미국에서 좋아하는 강한 비트를 음악에 많이 사용하는 등 전략을 잘 세운 것 같다.

스포티파이에선 AI(인공지능)가 단기간에 스트리밍 많이 된 노래를 자동으로 주요 플레이리스트(선곡 및 추천 채널)에 넣는다. BTS가 스포티파이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낸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차트메트릭 BTS 분석 차트. BTS의 페이스북 팬이 가장 많은 지역은 필리핀이다(위), BTS의 유튜브 조회 수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가운데). BTS의 스포티파이 인기 지표는 92점으로 미국 톱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90) 보다 높다(아래).

◆ 케이팝에 도움 주고 싶어 창업

-음악 빅데이터 스타트업을 창업한 계기가 궁금하다.

“오라클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계속 데이터를 다뤘다. 데이터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싶었는데, 케이팝 가수들 데이터가 흥미롭더라.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회사의 본질은 좋은 가수를 발굴해 키우는 것이다. 코딩, 데이터 분석, 예측 등은 이들 회사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 작업을 잘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면 케이팝 업계 전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좋은 반응이 왔을 때 이를 성공적인 결과로 만들려면 데이터가 중요하다.”

-음악 빅데이터 시장이 존재하나.

“작년 3월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세계 최대 음악·문화·스타트업 행사)’에 다녀왔는데 미국과 유럽의 경우 음악 데이터 수요가 확실히 있었다. 음반 기획사, 매니지먼트 회사가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

경쟁사도 존재한다. 뮤직메트릭(Musicmetric)이란 회사다. 2015년 1월 애플이 이 회사를 인수했다. 미국 3위 음악 스트리밍 업체 판도라가 5000만달러(약 560억원)에 인수한 음악 데이터 분석업체 넥스트빅사운드도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 고객 중심으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음악 시장의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 소비자의 음악 취향은 매우 다양하다.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장르, 상황, 최신 음악 등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수십, 수백 개의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한다. 인기 플레이리스트에 음원이 포함돼야 스트리밍이 많이 되는 구조다.

일례로 스포티파이에 ‘민트(mint)’라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 이 채널 팔로어가 400만 명에 이른다. 이 플레이스트에 들어가면 400만 명에게 음원이 노출되는 셈이다. 이 플레이리스트는 정해진 음악 분류 알고리듬에 맞춰 자동으로 곡을 선정, 팔로어에게 들려준다. 에코네스트란 회사를 인수해 구축한 기술이다.”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BTS 페이지.

-디지털화로 음악 산업이 침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

“과거 미국의 음악 소비자 한명이 1년 동안 평균적으로 음악에 쓰는 돈이 60달러(CD 4~5장) 정도였다. 음악 서비스 방식이 스트리밍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이 금액이 120달러로 늘었다. 한 달에 10달러 정도를 내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스트리밍으로 어떤 음악이든 자유롭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효용도 크다.

작년 기준 세계 디지털 음원 매출은 17.7% 증가한 78억달러(한화 8조8000억원)를 기록해 전체 음악 시장 매출의 50%를 넘어섰다. 전체 음악 시장 매출도 전년보다 6% 증가했다.”

◆ “가치 있는 제품 만들면 지갑 열려”…제품 직접 개발

-차트메트릭의 주 고객은.

“마케팅도 안 했는데 유럽 고객들이 먼저 가입하기 시작하더라. 이 중 프리미엄 서비스인 유료 고객은 5% 정도다. 유료 고객은 월 50~100달러를 낸다. 올해 3월부터 매출이 발생했다.

한국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거의 모든 것을 다 하는데, 미국, 유럽은 세분돼 있다. 음반 기획사, 유통사,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회사, 아티스트 본인 모두 고객이다.”

-투자는 얼마나 받았나.

“처음 시작할 때 스파크랩스, 매쉬업엔젤스, 미국의 부가 벤처스 등으로부터 엔젤투자 2억원만 받고, 추가 투자 유치는 아직 안 하고 있다. 외부에서 돈을 끌어오기 전에 내 제품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증명하고 싶었다.

오라클에서 일할 때 경험을 돌이켜 보면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면 사람들이 지갑을 열더라. 가치 있는 제품을 입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조성문 차트메트릭 대표가 2015년 12월 열린 스파크랩스 데모데이 무대에 올라 발표하고 있다.

-원천 데이터는 어떻게 가져오나.

“한국의 경우 대부분 직접 크롤링(데이터 수집)을 해야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통해 수집할 수 있다. 애플 뮤직에선 돈을 내면 데이터를 가져올 수 있고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무료로 데이터를 쓸 수 있다.”

-고객 반응은 어떤가.

“‘Date Night’라는 호주 출신 일렉트로닉 뮤직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은 ‘차트메트릭 서비스 사랑한다’며 메일 보내주고 자세한 피드백을 보내 주기도 한다. 이런 고객을 볼 때 너무 뿌듯하다. 아티스트들이 우리 서비스와 함께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유니버설뮤직 부사장을 역임했던 채즈 젠킨스(chaz jenkins)라는 사람도 우리 제품 팬이다. 그가 여러 업계 중요 인물을 소개해줘서 아예 회사 자문으로 영입했다.”

-제품 개발은 누가 하나.

“내가 직접한다. 내 인건비가 제일 싸기 때문이다.(웃음) 매일 새로 가져오는 데이터가 300만 개인데 그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사용자 환경(UI)도 내가 담당한다. 직접 개발하면서 제품에 대한 애착을 많이 가지게 됐다.”

-위기는 없었나.

“올해 1~3월 유료화하기 직전이 가장 힘들었다. ‘최악의 경우 직원 다 내보내고 혼자 개발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포기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작전 사령관보다 전쟁터가 좋아”…창업은 나 자신을 찾는 방법

-원래 음악을 좋아했나.

“그렇다. 음악 산업이 낯설지는 않았다. 첫 직장이 게임빌이었는데, 게임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고 음악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인류 역사에 음악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1000년 후에도 함께 있을 것이다. 음악은 인류를 즐겁게 하는 선한 사업이다. 개인적으로 진지한 미션을 가지고 사업하는 사람이 보기 좋더라. 내 사업에서도 의미를 찾고 싶었다.”

-블로그 등을 통해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대학 때 선배가 창업한다길래 우연히 따라 들어갔다가 게임빌 창업 멤버가 됐다. 돌이켜 봤을 때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다. 게임빌에 있을 때 캘리포니아 회사들 많이 만났고, 실리콘밸리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여기서 살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실리콘밸리를 궁금해 하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걸 글로 공유한 게 시작이었다. 감사하게도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과 연결됐다. 하지만 스타트업 시작한 후로는 그런 활동을 거의 안 하고 있다.”

-벤처캐피털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데.

“향후 진로를 고민하던 중 스크럼 벤처스(Scrum Ventures)에서 잠시 일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그 길을 가려고 생각해보니 재밌지 않았다. 작전 지시 사령관보단 전쟁터에 나가 피흘리는 게 더 좋았다. 눔, 아이디인큐 등에 엔젤투자하기도 했다.”

BTS는 올해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7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케이팝 그룹 최초로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 상을 받았다.

-경영철학이 있다면.

“대단한 비전을 스스로 만들진 않았다. 다만 아인슈타인, 에디슨, 일론 머스크처럼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감동주는 사람을 고맙게 여기고 있다. 제품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뜻이다.

‘Makers change the world’란 말을 좋아한다. 만든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표시하게 되는 그런 제품을 만들고 싶다.”

-목표는 무엇인가.

“투자자들에게 수익 남겨주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이 회사가 비전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이 되면 좋겠다.”

-예비 창업가에게 조언해 준다면.

“창업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같은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창업한 후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얻는 게 있다. 일이 잘되면 진짜 좋은 것이고.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 같은 사람 보면 행복해 보이더라. 산업혁명 이전의 수렵채집인처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스스로 개척해서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조성문 대표는

197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UCLA Anderson에서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실리콘밸리 IT 기업 오라클에서 5년간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한 후 2015년 음악 빅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차트메트릭을 창업했다. 실리콘밸리 최대의 한국인 네트워크 ‘베이에어리어K 그룹(Bay Area K Group)’의 공동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