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동안 식당을 하면서 지금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었어요. GM이 떠날 수도 있다고요? 그러면 군산은 완전히 ‘유령도시’가 되는 겁니다.”

한국GM의 생산기지 세곳중 한곳이 위치한 전북 군산. 지난 26일 이곳의 주요 상권 중 하나인 경암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조모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식당이며 술집, 노래방은 물론이고 원룸과 당구장 등도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별로 없다”며 “지역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경암동은 옛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한국GM 직원들이 자주 찾는 군산의 주요 상권이다. 그러나 퇴근시간대인 저녁 7시 무렵에도 이곳의 거리는 한산했다. ‘임대’ 문구가 붙은 빈 상가도 여럿 눈에 띄었다. 2개 층으로 이뤄져 제법 큰 규모인 조씨의 고깃집에도 저녁 8시 무렵이 될 때까지 좀처럼 손님이 들지 않아 대부분의 테이블이 빈 채로 남아있었다.

한국GM 군산공장 내부 외벽에 나붙은 노조의 임단협 현수막

최근 몇 년간 한국GM의 자동차 판매는 부진을 거듭했다. 특히 군산 공장에서 생산하는 준중형 크루즈와 올란도 판매 부진은 심각한 상태다. 현재 군산 공장의 가동률은 30%에 불과하다. 특근 및 주말 수당이 줄어든 직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지역 경제도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GM에서 일감을 받는 130여개 지역 협력업체들의 사정도 말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의 폐쇄로 가뜩이나 어려운 군산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미국 GM 본사가 한국시장 철수나 생산시설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설상가상인 상황이다.

군산에서 만난 한 지역주민은 “GM 본사가 한국의 강성노조에 진저리를 내면서 한국을 떠나려 한다고 들었다”며 “다같이 죽게 생겼는데 파업에만 골몰한 노조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판매 부진에 군산공장 한 달 중 가동일은 고작 7~8일

이날 오후 4시쯤 한국GM 군산공장의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직원들은 이미 퇴근한듯 정문 주변에서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정문 주변과 건물 외벽에 노조의 투쟁 결의 현수막 여러 개만 바람에 나부꼈다.

한국GM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준중형 세단 크루즈와 준중형 레저용 차량(RV)인 올란도 두 가지다. 기아차 카니발 등에 밀려 판매량이 계속 감소 중인 올란도는 물론 신형 크루즈마저 당초 기대에 크게 못 미치면서 군산공장의 가동일은 한달에 주간 1교대 7~8일에 불과하다.

지난해 올란도 국내 판매량은 전년대비 34.6% 줄어든 1만2881대에 그쳤다. 올들어 8월까지 판매량도 5541대로 전년동기대비 37.3% 급감했다. 크루즈의 지난해 판매량은 1만847대로 전년대비 36.4% 감소했다. 올해 초 출시된 신형 크루즈도 8월까지 7973대 판매에 머물렀다. 한국GM은 신형 크루즈 출시 당시 월판매 목표치를 3000대로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 판매량은 3분의 1 수준인 월 1000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중형세단 말리부 등 5종의 차량을 만드는 부평과 경차인 스파크를 포함해 3종을 생산하는 창원공장의 사정은 군산에 비해 나은 편이다. 부평과 창원은 2교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부평과 창원의 월별 근무일수는 22일을 기록 중이다. 한국GM이 공장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면 군산공장이 일순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GM 군산공장 정문

군산공장은 2010년대 초반까지 풀(완전)가동 체제를 유지하며 활기를 보였다. 그러나 2013년 GM의 쉐보레 브랜드가 유럽 시장에서 철수한 이후 군산공장에서 주로 생산하는 소형, 준중형 차량의 유럽 수출길이 막히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1년 군산공장의 생산대수는 26만8000대에 달했다. 연 생산능력인 28만대에 버금갔다. 하지만 2013년에는 절반에 가까운 14만5000대로 급감했다. 지난해 생산대수는 3만4000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생산액도 2011년 5조6000억원에서 2013년 3조2000억원, 지난해는 1조원으로 감소했다. 이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도 2011년 3671명에서 현재는 1900명으로 줄었다.

한국GM 관계자는 “쉐보레의 유럽 철수와 함께 최근 몇 년간 스포츠유틸리차량(SUV)의 인기로 준중형차의 수요가 크게 줄면서 군산공장 생산 차량의 판매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했다.

문용묵 군산시 지역경제과장은 “최근 몇 년간 군산공장을 살리기 위해 매일 한국GM이 만드는 차를 구매하자는 캠페인에 벌이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GM은 옛 대우차 시절부터 군산의 향토기업이나 다름없다”며 “최근 현대중공업 조선소도 가동을 멈춘 상황에서 한국GM 공장마저 문을 닫으면 군산의 지역경제는 마비될 수 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 직격탄 맞은 한국GM 협력사…5년만에 직원 수 3분의 1로 감소한 곳도

한국GM 군산공장에 부품 등을 공급하는 군산지역의 136개 협력사들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국GM에 자동차 페달 등 차체 구성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A사를 찾았다. 공장 내부 작업석 대부분은 비어 있었다. 기계의 전원도 꺼져 있었고 작업장 곳곳에는 먼지가 쌓인 반제품 상자가 즐비했다.

군산의 한국GM 협력업체 공장 내부. 대부분의 설비가 가동을 멈췄고 상자에는 갈 곳을 잃은 부품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이사로 10여년간 근무 중인 이모씨는 “2000년대 초 GM이 옛 대우차를 인수한 이후 지금처럼 경기가 악화된 적이 없었다”며 “납품물량 감소로 가동률이 고작 10% 수준이다”고 허탈해했다. 그는 “5년 전 700억원을 웃돌았던 매출액은 지난해 135억원으로 감소했고 직원 수도 170여명에서 60여명으로 줄었다”며 “일감은 없는데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비 지출은 계속돼 더 이상 회사 존속이 어려울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주변에 위치한 다른 협력사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GM 협력업체 여러 곳이 밀집한 군산시 소룡동 지역은 부품 운반 등을 위해 오가는 차량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창 조업을 해야할 오후 1~2시에도 일부 소규모 공장들은 아예 문을 닫고 있었다. 공장 주변의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연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문용묵 과장은 “한국GM에서 근무하는 1900여명의 직원과 136개 협력사 직원을 포함하면 약 1만3000명의 근로자가 군산공장과 관계돼 있다”며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실적 부진과 가동률 저하로 직원 수가 줄고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상권과 부동산 경기까지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 “철수說 나오는 판국에 파업만 하나”…노조에 싸늘해진 지역 민심

군산시와 시민단체 관계자, 지역주민들은 GM의 한국시장 철수설이나 구조조정 가능성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윤진주 전북자동차산업교류회 부회장(호원대 교수)은 “군산시 인구 28만명 가운데 15%의 주민이 한국GM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다”며 “군산공장이 문을 닫게 될 경우 군산시의 인구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시청 로비에 놓인 한국GM 군산공장의 생산차량

GM은 올들어 유럽 시장에서 운영하던 오펠을 매각한데 이어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잇따라 철수했다. 자동차 판매 부진으로 최근 3년간 1조원 넘는 영업손실을 낸 한국 시장이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자동차 업계의 전망이 많다. 지난 1일 취임한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한국은 GM그룹이 진출한 글로벌 시장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수익성 개선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생산라인의 구조조정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GM 본사는 특히 여러 차례 한국GM의 강성노조 문제를 거론해왔다. 스테판 자코비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2015년부터 몇 차례 “한국GM의 노조가 생산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8월말 퇴임한 제임스 김 한국GM 전 사장도 “GM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인상만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는 노조의 행태는 스스로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한국GM 노사는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조는 월 기본급 15만4883원 인상과 통상임금 500% 성과급 일시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사측은 기본급 5만원 인상과 성과급 1050만원 지급 등을 제시한 상황이다.

사측은 최근 몇 년간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경영사정을 내세워 노조측을 설득하고 있지만 노조는 강경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올들어 18차례의 교섭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한국GM 노조는 지난 20일에 올해 다섯번째 부분파업을 벌였다.

한국GM 군산공장 내부에 걸린 현수막

한국GM 노조에 대한 군산시와 지역주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문용묵 과장은 “군산시장과 부시장이 노조 집행부 간부들을 만나 임금단체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좀처럼 설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관계자도 “노조는 한국GM의 철수보다 당장 손에 쥘 돈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며 파업을 불사하는 노조 때문에 협력사들도 공멸(共滅)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산 경암동에서 만난 한 지역주민은 “한국GM 노조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영향으로 강경투쟁만 지속하고 있다면 정부나 정치권이라도 갈등 해결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최근 경제상황에 무관심한 정부와 정치권 때문에 지역경제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