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승부수가 이번에도 통할까.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이 장기화되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하나둘씩 발을 빼고 있는 가운데, SK그룹은 중국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SK그룹은 올 들어서만 중국에서 3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이닉스를 인수해 그룹의 황금알 낳는 거위로 만든 최 회장의 베팅이 중국 시장에서도 통할지 다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차이나 인사이더…올 들어 3조원 이상 중국 투자
지난 2015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해 경영에 복귀한 최 회장이 선택한 첫 해외출장지는 중국이었다. 그는 곧바로 중국으로 날아가 중국 석유화학업체 시노펙과 합작으로 만든 우한NCC 공장을 방문했다. 사드 사태가 본격화된 올 7월에도 중국 톈진(天津)을 찾아 석유화학, 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업체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2년 동안 12차례 이상 중국을 방문하며 중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SK그룹 고위 임원은 "최 회장이 그동안 보아오 포럼(중국판 다보스포럼)의 이사로 활동하는 등 중국 정·재계 고위층과의 인적 네트워크가 상당하기 때문에 중국 사업에 접근하는 폭과 깊이가 남들과 다르다"며 "우리도 사드로 인한 피해가 있지만 중국 사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 회장의 중국 전략은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로 대표된다.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Insider)로 중국 시장에 접근하겠다는 의미로, 중국에서 번 돈을 재투자해 현지화하는 내부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도 "중국은 변화 속도가 빠르고 폭도 넓다. 우리를 앞질러 가는 분야도 있다"며 "중국과의 공생, 윈-윈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 투자의 기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올해 SK그룹의 중국 투자는 벌써 3조원을 넘어섰다. SK㈜는 3700억원을 들여 중국 2위 물류센터 운영기업 'ESR' 지분 11.77%를 인수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자회사인 SK하이닉스 세미컨덕터차이나에 1조1161억원을 들여 유상증자 방식으로 출자했다. 이와 별도로 SK㈜·SK하이닉스·SK이노베이션·SK텔레콤 등은 약 1조4756억원을 SK그룹의 중국 지주회사인 SK차이나에 출자했다. 이에 대해 SK 측은 "중국 내에서 적기에 투자사업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재원을 마련해 놓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SK머티리얼즈는 중국 내 2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고, SKC 역시 중국 장쑤성에 반도체용 정밀화학소재 공장 착공을 준비 중이다. 재계에서는 이를 최 회장의 '역발상'이라고 보고 있다. 롯데마트와 이마트 등 국내 주요 기업이 현지 시장에서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SK그룹은 정반대 전략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한 10대 그룹의 CFO(최고재무책임자)는 "SK의 경우 중국 내수시장을 직접 공략한 롯데·신세계와는 중국 사업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공격적인 투자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이라며 "어려울 때 투자를 늘려 사드 정국 이후를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태원의 '닥투'(닥치고 투자)…올해 사상 최대 예상
최태원 회장이 투자를 늘리는 것은 비단 중국 시장만이 아니다. SK그룹의 올해 전체 투자 목표는 17조원. 지난해 투자 실적(14조원) 대비 20% 늘어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덕분에 요즘 M&A(인수합병)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그룹은 단연 SK이다. 최근 진행 중인 도시바 인수전뿐 아니라 국내외 크고 작은 M&A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9월 주방, 생활가전 제조업체인 동양매직(현 SK매직)을 인수했다. 올 1월엔 SK㈜가 반도체 기판 생산업체인 LG실트론과 물류 자동화 회사인 에스엠코어를 샀다. SK종합화학은 미국 다우케미컬의 에틸렌 아크릴산(EAA) 사업을, SK바이오텍은 글로벌 제약사 BMS의 아일랜드 공장을 인수했다.
M&A 업계 관계자는 "다른 대기업은 이런저런 이유로 대형 M&A에 역량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SK의 움직임은 M&A 시장에서 더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