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승부수가 이번에도 통할까.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이 장기화되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하나둘씩 발을 빼고 있는 가운데, SK그룹은 중국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SK그룹은 올 들어서만 중국에서 3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이닉스를 인수해 그룹의 황금알 낳는 거위로 만든 최 회장의 베팅이 중국 시장에서도 통할지 다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차이나 인사이더…올 들어 3조원 이상 중국 투자

지난 2015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해 경영에 복귀한 최 회장이 선택한 첫 해외출장지는 중국이었다. 그는 곧바로 중국으로 날아가 중국 석유화학업체 시노펙과 합작으로 만든 우한NCC 공장을 방문했다. 사드 사태가 본격화된 올 7월에도 중국 톈진(天津)을 찾아 석유화학, 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업체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2년 동안 12차례 이상 중국을 방문하며 중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SK그룹 고위 임원은 "최 회장이 그동안 보아오 포럼(중국판 다보스포럼)의 이사로 활동하는 등 중국 정·재계 고위층과의 인적 네트워크가 상당하기 때문에 중국 사업에 접근하는 폭과 깊이가 남들과 다르다"며 "우리도 사드로 인한 피해가 있지만 중국 사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중국 톈진(天津)을 찾아 석유화학과 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은‘톈진포럼 2017’에서 개막식 축사를 하는 모습.

최 회장의 중국 전략은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로 대표된다.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Insider)로 중국 시장에 접근하겠다는 의미로, 중국에서 번 돈을 재투자해 현지화하는 내부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도 "중국은 변화 속도가 빠르고 폭도 넓다. 우리를 앞질러 가는 분야도 있다"며 "중국과의 공생, 윈-윈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 투자의 기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올해 SK그룹의 중국 투자는 벌써 3조원을 넘어섰다. SK㈜는 3700억원을 들여 중국 2위 물류센터 운영기업 'ESR' 지분 11.77%를 인수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자회사인 SK하이닉스 세미컨덕터차이나에 1조1161억원을 들여 유상증자 방식으로 출자했다. 이와 별도로 SK㈜·SK하이닉스·SK이노베이션·SK텔레콤 등은 약 1조4756억원을 SK그룹의 중국 지주회사인 SK차이나에 출자했다. 이에 대해 SK 측은 "중국 내에서 적기에 투자사업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재원을 마련해 놓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SK머티리얼즈는 중국 내 2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고, SKC 역시 중국 장쑤성에 반도체용 정밀화학소재 공장 착공을 준비 중이다. 재계에서는 이를 최 회장의 '역발상'이라고 보고 있다. 롯데마트이마트 등 국내 주요 기업이 현지 시장에서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SK그룹은 정반대 전략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한 10대 그룹의 CFO(최고재무책임자)는 "SK의 경우 중국 내수시장을 직접 공략한 롯데·신세계와는 중국 사업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공격적인 투자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이라며 "어려울 때 투자를 늘려 사드 정국 이후를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태원의 '닥투'(닥치고 투자)…올해 사상 최대 예상

최태원 회장이 투자를 늘리는 것은 비단 중국 시장만이 아니다. SK그룹의 올해 전체 투자 목표는 17조원. 지난해 투자 실적(14조원) 대비 20% 늘어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덕분에 요즘 M&A(인수합병)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그룹은 단연 SK이다. 최근 진행 중인 도시바 인수전뿐 아니라 국내외 크고 작은 M&A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9월 주방, 생활가전 제조업체인 동양매직(현 SK매직)을 인수했다. 올 1월엔 SK㈜가 반도체 기판 생산업체인 LG실트론과 물류 자동화 회사인 에스엠코어를 샀다. SK종합화학은 미국 다우케미컬의 에틸렌 아크릴산(EAA) 사업을, SK바이오텍은 글로벌 제약사 BMS의 아일랜드 공장을 인수했다.

M&A 업계 관계자는 "다른 대기업은 이런저런 이유로 대형 M&A에 역량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SK의 움직임은 M&A 시장에서 더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