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6시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2·3층 '북파크'. 1984㎡(약600평) 공간에 영화 '인터스텔라'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까마득한 서고가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책장 사이로 자리 잡은 200여 좌석은 빈자리가 없었고, 통유리벽을 통해선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내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스피커에선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 나란히 앉아 함께 사진집을 넘기는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대학생 이상민(25)씨는 "색다른 데이트를 즐기기엔 이런 서점이 좋다"면서 "책을 읽으며 놀다가 저녁때는 가까운 이태원으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가 문화나눔재단인 카오스재단에 위탁해 운영 중인 공간이다.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으로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던 '오프라인 서점'이 부활하고 있다. 최근 문을 연 쇼핑몰과 대형마트, 백화점에는 어김없이 대형 서점이 입점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경영난으로 속속 문을 닫았던 신촌과 홍대, 종로 등의 크고 작은 서점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이곳은 2200㎡(약 666평) 규모에 '예움(예술이 움트는 곳)'이라는 아트 상품 전용 코너부터 애견 상품까지 다양한 물건이 전시·판매되고 있었다. 공무원 장현경(35)씨는 "합정역 부근에서 약속이 있어 왔다가 시간이 잠깐 남아 어딜 갈까 고민하다 서점을 찾았다"면서 "다채롭게 공간을 구성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부활하는 오프라인 서점
서점 업계에 따르면, 오프라인 '빅3'로 꼽히는 교보문고·영풍문고·서울문고(반디앤루니스)가 지난해부터 새로 문을 연 오프라인 서점 수는 30개다. 알라딘은 중고서점을 지난해 17개 늘려 총 37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예스24도 지난해 4월부터 매장을 잇따라 내기 시작해 현재 5개까지 늘어났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5~2016년 전국적으로 새로 생긴 서점은 173개에 달한다.
오프라인 서점이 늘어난 표면적인 이유는 쇼핑몰과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신규 매장을 열면서 집객 효과를 노리고 서점을 유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근본적으로 고객들의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니즈(needs·필요성)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고객과 책의 물리적인 접촉을 늘리는 게 매출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서점에서 저자와의 만남 등 행사를 하며 책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이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동네 곳곳 서점… 아날로그의 반격
책만 사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즐기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복합 공간'으로 변신한 것도 부활에 한몫했다. 교보문고는 2015년 서울 구로구의 교보문고 신도림점에서 4분의 3은 생활용품 등을 파는 핫트랙스 공간으로, 4분의 1만 책을 파는 서점 공간으로 변신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이후 광화문점도 생활용품 공간을 늘리고 도서관 분위기가 나게 리모델링한 뒤 새로 문을 여는 매장은 복합 매장 개념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올해 4월에 들어선 합정점은 임대 과정에서 안에 들어간 식당까지 서점 분위기와 어울릴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심사한 다음 유치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한 가지 주제로 내부를 꾸민 '작은 책방'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앞 뒷골목에 추리소설 전문 서점 미스터리 유니온이, 지난해 4월에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음악 도서 전문서점 초원서점이 문을 열었다. 서점업계 관계자는 "신촌을 중심으로 들어선 이름이 알려진 독립·테마 서점만 해도 20곳이 넘는다"며 "유명 광고인 출신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 가수 요조 등이 서점을 열면서, 책방을 방문하는 행동이 젊은층 사이에서 트렌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