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재촉 안할테니 꼼꼼히”…카카오뱅크 돌풍 속 빛난 김남구 '그림자 리더십'

  • 전준범 기자
  • 입력 : 2017.08.01 07:00

    “1호면 어떻고 2호면 어떻습니까. 재촉하지 않을테니 조금 늦어지더라도 완성도에 집중하세요.”

    올해 초 카카오뱅크 준비 상황을 보고받던 김남구(54)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점검해야 할 부분이 생각보다 많고 복잡하다”는 담당 임원의 말에 이 같이 답했다. 카카오뱅크를 상반기 중 출범시킨다는 내부 목표에 대해 해당 임원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김 부회장이 눈치챈 것이다.

    올해 4월 위클리비즈(WEEKLY BIZ) 인터뷰를 위해 본지와 만난 김 부회장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다들 출범 일정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조바심 내지 말고 무조건 서비스 완성도를 1번에 두라고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당시 케이뱅크는 이미 출범해 영업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 조선일보DB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 조선일보DB
    국내 2호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가 지난 7월 27일 출범과 함께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업계에서는 서비스 준비 과정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준 김남구 부회장의 ‘그림자 리더십’이 카카오뱅크의 성공적인 데뷔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카카오뱅크의 지분 5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 뒤에서 일정 조율·카카오 배려…대주주 발톱 숨겨

    김 부회장은 평소 인터넷은행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한국투자금융지주는 KB금융(105560), 신한지주(055550)등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은행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이 ‘종합금융지주’의 퍼즐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카카오뱅크의 성공은 필수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김 부회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임직원에게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나의 꿈은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아시아 최고 금융사로 발돋움하는 것”이라며 “카카오뱅크가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주력 계열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인터넷은행에 대한 강한 성공 의지와 달리 김 부회장은 카카오뱅크 준비 과정에 가급적 간섭하지 않았다. 모든 의사결정은 이용우·윤호영 공동대표에게 맡겼다. 그 대신 출범 준비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정에 쫓기는 임원들을 다독여 실무진의 숨통을 간접적으로 터주는 일도 김 부회장의 역할이었다.

    사명을 ‘카카오뱅크’로 결정할 때도 김 부회장의 그림자 리더십이 발휘됐다. 대주주로서 욕심을 내볼 수 있었지만, 김 부회장은 한투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파트너사(카카오(035720))의 이름을 먼저 고려하라고 주문했다.

    카카오뱅크 공동대표인 이용우 대표(왼쪽)와 윤호영 대표 / 카카오뱅크 제공
    카카오뱅크 공동대표인 이용우 대표(왼쪽)와 윤호영 대표 / 카카오뱅크 제공
    김 부회장은 동원증권 사장이던 지난 2005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할 때도 본가(本家) 명칭인 ‘동원’을 과감히 포기한 바 있다. 그는 김재철(82)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김 부회장은 “브랜드 관점에서 보면 카카오가 더 매력적인 옵션”이라며 “대주주라는 이유로 회사 이름을 고집한다면 그건 오만한 행위”라고 말했다.

    한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대주주(한국투자금융지주)와 실제 설립을 주도한 회사(카카오)가 다르다보니 자칫 양사간 기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내부적으로 존재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대주주가 서포트에 집중하면서 모든 편의를 봐준 덕분에 카카오뱅크가 별 탈 없이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은행법 개정 이후도 고려한 행동”

    김 부회장이 카카오뱅크와 관련해 ‘키다리 아저씨’ 역할에 집중하는 또다른 이유는 은행법 개정 여부에 따라 향후 대주주가 카카오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이 ‘잠재적’ 대주주인 카카오의 입장을 배려해 자신과 한국투자금융지주가 부각되는 걸 자제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최대 10%까지만 가질 수 있다. 의결권 행사는 4% 내에서만 가능하다. 대기업이 은행에 맡겨진 고객 자산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걸 막자는 ‘은산분리 원칙’에 따른 조치다. 카카오의 카카오뱅크 지분이 10%에 불과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국회에는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 지분의 5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또 지분을 34%까지 허용하고 5년 주기로 정부 심사를 받도록 하는 인터넷은행 특례법안도 국회에 올라있다. 그러나 은산분리 원칙의 취지를 훼손해선 안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조선일보DB
    조선일보DB
    금융업계에서는 은행법이 개정될 경우 카카오뱅크에 대한 카카오의 지분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는 핵심 주주간 힘겨루기가 발생하기 쉽다”며 “김 부회장이 절제와 균형의 묘를 보여주고 있어 카카오뱅크가 순항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와 관련해 먼저 나서는 걸 꺼리는 김 부회장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증자 필요성에 대해서 만큼은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2018년 말까지는 증자를 꾸준히 진행해 자산 규모를 크게 늘릴 것”이라고 전했다.

    카카오뱅크의 초기 자본금은 3000억원이다. 그런데 영업 개시 5일 만에 100만 계좌를 돌파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자 “이대로 가면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지난 4월 영업을 개시한 1호 인터넷은행 케이뱅크는 신용대출이 예상보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바람에 7월부터 추가 대출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