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신고리 원전(原電)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방침에 대해 삼성물산·두산중공업 등 공사업체들이 "법적인 근거가 뭐냐"며 반발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노동조합은 이에 앞서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 결정에 참여한 이사진과 정부 관계자 전체를 배임 행위로 고소·고발할 예정"이라고 선언했다.

원전 공사에 참여하는 건설사들은 최근 한수원에 "공사를 중단해야 하는 법적인 근거는 뭔지, 공사 중단에 따른 피해를 어떻게 보전해줄 건지 알려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9일 밝혔다. 두산중공업은 "현재 단계에서 업무(공사) 일부 또는 전부를 중지시킬 만한 '합리적 사유'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 인근에 일감이 없어 대기 중인 포클레인 등 중장비가 주차돼 있다.

현행 원자력안전법과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허가 절차나 기준 또는 안전에 문제가 있을 때만 원전 건설을 중단할 수 있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법적으로 안전 또는 절차상 문제가 없는 한 원전 건설을 중단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광암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진행하던 국책 사업을 중단한 적이 없어 판례도 없다"면서 "실제 공사를 중단하면 손해배상 등 관련 소송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에너지법 4조를 보면 에너지 공급자는 국가 시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면서 "한수원은 공기업이라 정부 시책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이번 일시 공사 중단을 공식 의결해야 하는 한수원도 지난 7일 이사회를 열고 관련 절차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9일 "처음 겪는 일이라 이사들이 이런 결정을 그냥 내렸다가 나중에 (배임 등) 책임질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와 일단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이사회를 마쳤다"고 전했다.

현재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에 따른 비용 손실은 2조6000억원(정부 추산)에서 12조원(자유한국당)까지 다양하다. 한수원은 이와 별도로 이번 일시 중단 과정에서만 근로자 임금 등 1000억원 이상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정훈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달 30일 삼성물산과 두산중공업, SK건설 등 공사 관련 업체 17곳에 공문을 보냈다. 관할 정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날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공론화 기간 중 일시 중단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이행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주시기 바랍니다"는 한 장짜리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자 이를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국무회의를 통해 공론화 위원회를 거쳐 최종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산업부와 한수원은 이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자 삼성물산은 지난 4일 "현재 현장 협력업체와 노무자가 동요, 전체 조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협력업체와 계약 체결(유지) 여부, 자재·장비 현장 반입 중단 시점, 자재 제작과 용역 업무 중지 시점에 대해 확인이 시급하다"면서 회신 공문을 보냈다. 두산중공업도 6일 "공사 일시 중단에 대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만 있을뿐, 법적·계약적 근거가 뭔지, 필요한 조치가 뭔지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SK건설도 같은 날 "시공 인력, 장비, 협력업체, 각종 운영 경비 포함 등 명확한 보상 지침이 없어 후속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전 건설 허가와 중단 조치는 원래 국무총리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통해 진행한다. 논란의 중심이 된 신고리 5·6호기 건설 역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8개월간 심의를 거쳐 작년 6월 최종 허가했다. 이 때문에 원안위를 거치지 않고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공사 중단을 결정하겠다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공사 현장도 어수선하다. 현재 공사업체들은 기본 공정 외에 휴일이나 야간 작업을 멈추고 정부 대책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아직 정식 중단 명령이 내려오지 않아 공사를 공식 중단하진 않았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공정 속도를 높이는 특별 작업은 지난달 27일 이후 배제했다. 신고리 5·6호기 현장 근로자 150여명은 최근 현장에서 농성을 벌이면서 건설 중단에 따른 '초과 근무 보장' '일자리 승계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