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업계가 3중고를 겪고 있다. 신규 면세점 급증에 따른 경쟁 과열, 사드 보복에 의한 중국 관광객 감소, 내수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업황이 너무 얼어붙어 한화갤러리아가 제주공항 면세점 특허를 반납한 것을 시작으로 ‘줄 반납’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면세점 업계의 현안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한화갤러리아는 3일 “제주공항 국제선 출국장 면세 특허를 자진 반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갤러리아는 올 들어 출국장 면세점 매출이 월 평균 17억원 안팎으로 임대료(월 21억원선)에도 미치지 못해 불가피하게 특허를 반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 2014년 제주공항 입찰에 참여해 사업권을 따낸 뒤 3년째 영업해왔다. 원래대로라면 2019년 4월까지 영업할 수 있다. 갤러리아 제주 면세점은 2014년 반짝 흑자를 냈다가 2015년과 작년에는 각각 50억원, 10억원가량 적자(추정치)를 기록했다.

위기에 처한 면세점은 갤러리아 뿐만이 아니다. 전국 대부분 지역 면세점이 매출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그나마 수익성이 높은 서울 시내 면세점도 유커(중국 단체 관광) 감소로 일부 점포를 제외하곤 모두 적자로 돌아섰다. 두산, 에스엠(하나투어) 등 신규 면세점은 ‘흑자 달성’을 포기하고 운영 면적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하나투어면세점 한 관계자는 “오래 버티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최대한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잡화매장. 방문객이 없어 텅 비어 있다.

◆ 限韓令(한한령) 이후 매출 급감…“유커 구매력 따라올 관광객 없어”

3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면세점은 지난 2분기 대부분 적자를 기록했거나 미미한 수준의 흑자를 낸 것으로 관측된다.

갤러리아는 1분기에 이어 2분기도 1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되고, 두산과 하나투어면세점도 수십억원 적자로 추정된다. 지난해 매출 5조9000억원에 3000억원대 흑자를 낸 롯데면세점은 간신히 손익분기점(BEP)을 맞춘 수준이고, 신라면세점도 소폭 흑자를 내는 데 그쳤다. 지난해 124억원 적자로 돌아선 동화면세점도 올해 상반기 부진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 부진의 이유는 ‘유커’ 감소다.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롯데·신라 등 주요 면세점 매출은 중국이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을 내린 3월 중순 이후 전년 대비 30~40% 줄었다.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매출 부진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은 4월 이후 중국인 관광객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가량 줄었다. 전체 매출은 약 25% 감소했다. 내국인 마케팅을 강화하고 동남아시아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중국인 관광객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지 여행사에 수수료를 주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불러오는 비중이 높았던 갤러리아, 두산 등 일부 신규 면세점들의 매출 감소폭은 주요 면세점보다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국내 면세점 외국인 매출은 5억9015만달러를 기록해 전달(6억6495만달러)보다 11.2% 줄었다. 2월(8억8254만달러)과 비교하면 3분의 1가량 감소했다.

4월 국내면세점을 찾은 외국인 이용객 수도 3월(123만5000명)보다 19.2% 줄어든 99만8000명에 그쳤다. 외국인 이용객이 100만명 이하로 줄어든 것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관광객이 급감했던 2015년 7월 이후 1년9개월만에 처음이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지난 3월 사드 보복이 시작된 이후 일본, 동남아, 중동 등 다른 나라 의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유커 정도의 구매력을 갖춘 관광객이 많지 않다는 점”이라며 "매출 공백을 메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갤러리아 관계자도 “중국 출국 비행편수가 70% 급감하는 등 사드 보복으로 인해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한 면세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커 1인당 구매액은 약 300만원으로 내국인(60만원)의 5배에 이른다.

중국정부가 ‘한국관광상품’을 금지한 지난 3월 1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도착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래는 지난 2월 8일 막바지 동계휴가를 해외에서 보내려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출국수속을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모습.

사드 보복보다 경기 부진 등에 따른 면세점 불황이 더 염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신애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업체의 면세점 실적을 보면 유커 감소 등 일회성 요인 뿐만 아니라 내수 부진이 우려된다”고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황금 연휴가 있었던 지난 5월, 전 업계가 내국인 마케팅을 강화했지만 매출은 전년 대비 10% 오른 수준에 그쳤다”면서 “그 만큼 내수가 뒷받침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연말이면 반포 신세계면세점, 삼성동 현대면세점 개장으로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점도 부정적인 요인이다. 2개 면세점이 신규 개장하면 서울 시내 면세점은 13곳으로 늘어난다. 2014년 5개에서 3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 마른 수건 짜기 전략으로 나서는 면세점들…반납 이어질 가능성도

현재까지 면세점업계는 마른 수건 짜기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팀장급 이상 직원이 임금 10%를 반납하고 있으며, 갤러리아도 임원 이상은 임금 10% 반납, 중간관리자는 상여금 100% 반납을 결의했다. 이외 면세점도 모두 법인카드 반납, 상여금 반납 등의 조치를 취했다.

신규 면세점 중 상반기 유일하게 흑자를 낸 HDC신라면세점은 고정비를 30% 이상 줄였다고 밝혔다.

업계 일각에서는 한화 이외에도 두산의 두타면세점, 하나투어의 하나투어면세점(옛 에스엠면세점), 동화면세점 등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면세점이 특허를 자진 반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들 회사는 “현재로선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 면세점이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지난 2015년 신세계가 김해공항 면세점 특허를 반납한 이후 2년만이다. 그 이전에는 2002년 한진그룹, 2010년 애경그룹이 면세점 특허를 자진 반납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