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과 탈석탄발전 등 에너지정책 패러다임 변화로 전기요금 인상이 예고됐다. 정부는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중단 여부 등을 포함한 전원구성비 조정 방안을 마련한 후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첫 타깃으로는 특혜논란이 있는 대기업 심야 전기료 인상(경부하요금제 폐지)이 거론된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산업용 전기료 재편을 내걸었다. 이어 지난 19일 고리원전 1호기 퇴역식에서도 “전력수급과 전기료를 걱정하는 산업계의 우려가 있다”면서도 “탈원전은 후손들을 위해 지금 시작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근 문 대통령의 에너지 공약이 실현되면 전기료가 21% 가량 오를 것으로 추산했다.
전력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산업용 전기료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료를 재편한다는 신정부의 목표가 뚜렷한만큼 이를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 완화를 통해 전기료를 인하했는데, 다시 주택용 전기료를 올리는 건 부담이 크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2015년 말 기준 우리나라 전기료 단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산업용이 13번째, 주택용은 3번째로 싸다. OECD평균 전기료 단가는 산업용이 메가와트시(MWh) 당 103.3달러인데 우리는 94.9달러다. 주택용은 OECD 평균이 MWh당 160.9달러인데 한국은 102.7달러다.
다만 전기료 인상에 앞서 필요한건 구체적인 전원구성비 조정수치라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전원구성비란 원자력·석탄화력·천연가스·신재생에너지 등의 설비와 발전량이 각각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산업부는 올해 말까지 ‘제8차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해 향후 15년치의 전원구성비 조정내역을 담을 계획이다. 예를 들어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한 원전이 퇴출될 경우 전력수급기본계획상 원전의 설비비중과 예상 발전량이 감소하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원구성비가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전기료 재편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다”고 전했다.
관련업계에서는 심야 대기업에 적용되는 경부하요금제가 우선적으로 폐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심야 경부하요금제의 특혜논란이 적잖아 정부의 산업용 전기료 재편시 첫번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여름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 논란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산업용 전기료가 다른 용도에 비해 낮은 원가 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지난 2000년 이후 15차례에 걸친 전기료 인상에서 전체평균 49.5%, 주택용 15.3%, 일반용 23%씩 인상된데 반해 산업용은 84.2%나 인상됐다며 요금인상에 난색을 표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대기업이 24시간 공장 가동으로 심야에 값싼 경부하요금제를 적용받아 평균 전력 사용 단가가 낮아진 것이 외형적으로 특혜를 보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와 한전은 심야의 경우 원자력과 같이 가동중단이 어려운 기저부하의 이용률 향상과 주간의 최대부하 이전을 위해 대기업에 정책적으로 낮은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전기 사용이 적은 밤시간대(오후 11시~오전 9시)나 주말에 전기료를 원가 이하로까지 낮춰준다. 현재 경부하 전기료 최저가는 킬로와트시(KWh)당 52.8원으로 지난해 산업용 평균인 KWh당 107.11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편, 구체적인 요금 개편 공론화를 위해서는 종별 전력 원가가 필요하지만, 공개되지 않고 있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누진제 논란 당시에도 한전에 대한 전력 원가 공개 압박이 컸지만, 결국 공개되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종별 전력 원가는 해외 전력회사도 공개한 사례가 전무하다”고 일축했다. 박주헌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산업용·주택용·교육용 등 현행 용도별 요금체계는 원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로 비효율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원가를 공개한 후 이를 반영하는 요금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