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이 전 세계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당뇨병과 관상동맥, 뇌졸중은 물론 심지어 자폐증까지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비만으로 인한 연간 의료비 지출이 2008년 기준으로 1470억달러(165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3명 중 1명이 비만인 미국에서는 해마다 20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위를 잘라 내거나 줄이는 비만 수술까지 받는다.

과학자들이 수술의 고통 없이 비만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바로 장내(腸內) 세균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비만 수술을 받고 체중이 감소한 환자는 장내 세균이 전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칼로리 섭취를 줄이는 생체물질도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장내 세균을 비만 환자에게 이식하면 위 절제 수술 없이도 체중 감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기대한다.

비만 수술 후 장내 세균 다양해져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크라이만릭 브라운 교수 연구진은 지난 26일 '국제 미생물 생태학회 저널'에 "위 우회 수술을 받으면 장내 세균의 다양성이 크게 증가한다"고 밝혔다. 비만 수술은 크게 위를 밴드로 묶어 크기를 줄이는 '위 밴드 수술'과, 위 위쪽을 잘라 주머니를 만들고 이곳을 소장 아래쪽에 연결하는 '루와이(Roux-en Y) 위 우회 수술'로 나뉜다. 우회 수술은 위를 잘라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체중 감소 효과는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루와이 위 우회 수술을 받은 환자 24명과 위 밴드 수술 환자 14명, 수술을 받지 않은 고도비만 환자 10명과 정상인 10명의 대변에 있는 장내 세균을 비교했다. 그 결과, 위 우회 수술 환자의 장내 세균이 가장 종류가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비만 환자는 장내 세균의 다양성이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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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위 우회 수술로 위산이 줄면서 소장의 산성도가 낮아졌다고 밝혔다. 산소량도 증가했다. 이로 인해 입에 사는 이로운 유산균처럼 산성도가 높은 환경에 살지 못하던 세균들이 새롭게 소장에서 번성하게 됐다는 것. 브라운 교수는 "같은 일을 10명이 하면 한 명이 아파 일을 못해도 문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내 세균이 다양해지면 장기적으로 체중 감소에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장내 세균이 다양해지면서 지방산 축적을 막는 프로피온산염, 부리트산염과 같은 신호전달물질도 증가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반대로 메탄이나 수소를 발생시키는 세균들은 비만 환자보다 크게 줄었다. 메탄과 수소 세균이 많으면 음식물 발효가 촉진돼 영양분 흡수율도 증가한다.

장내 세균 이식받고 체지방 줄어

그렇다면 위 우회 수술을 받은 환자처럼 장내 세균을 다양화하면 수술을 받지 않아도 체중을 줄일 수 있을까. 동물 실험에서는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됐다. 2013년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은 위 우회 수술을 받은 생쥐의 장내 세균을 몸에 장내 세균이 없는 생쥐에 이식했더니 체중이 5%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사람에서도 같은 방법이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스웨덴 예테보리대 연구진은 2015년 국제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비만 수술 환자의 장내 세균을 생쥐에 이식해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루와이 위 우회 수술 환자와 위 밴드 수술 환자 각각 7명의 장내 세균을 생쥐에 이식했다. 사전에 생쥐가 갖고 있던 원래 장내 세균은 모두 없앴다. 위 우회 수술 환자의 장내 세균을 이식받은 생쥐는 수술을 받지 않은 비만 환자의 장내 세균을 받은 생쥐보다 체지방이 43% 적었다. 위 밴드 수술 환자의 장내 세균을 이식받은 생쥐는 체지방이 26% 낮게 나왔다. 이제 위 우회 수술 환자의 장내 세균을 직접 비만 환자에게 이식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브라운 박사는 "비만이 심할수록 수술도 위험해진다"며 "장내 세균을 보강해 위험한 수술 없이 체중을 줄이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