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발생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이후 항해사‧기관사를 포함한 해기사들 사이에서 사고 선박이 소속됐던 선사 폴라리스쉬핑이 기피 대상 1호가 됐다. 폴라리스쉬핑은 기존에 근무하고 있던 해기사들마저 회사를 떠나고 있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
26일 해기사 구인‧구직 정보 사이트인 시넷(SEANET)에 따르면 폴라리스쉬핑의 구인 공고는 사고 이후인 4월 11일부터 5월 24일까지 44일간 22차례 등록됐다. 사고 직전인 지난 1월 1일부터 3월 21일까지 80일간 올라온 폴라리스쉬핑의 구인 공고는 9개였다. 열흘에 한 번꼴로 올라오던 구인공고가 사고 이후 이틀에 한 번꼴로 잦아진 것이다.
폴라리스쉬핑은 회사 내 계약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연봉 10%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직원 처우 개선에 나섰지만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다. 폴라리스쉬핑은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로 해기사들이 가고 싶어 하는 직장 중 하나였지만, 사고 이후 인기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폴라리스쉬핑 인사팀은 다른 선사 인사팀에 자사 해기사들의 이직 신청을 받지 말아달라고까지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폴라리스쉬핑 관계자는 “인사팀이 다른 회사 인사팀에 연락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내용”이라며 “사고 이전에도 해기사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는 다른 선사들도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해기사들이 폴라리스쉬핑을 피하는 이유는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와 같은 노후 선박이 많기 때문이다. 폴라리스쉬핑이 보유 중인 화물선 32척 중 21척이 1990년대 건조된 노후 선박이다. 전체 선박의 평균 선령은 17.3년이다. 해운업계에서는 건조된 지 15년 이상이면 노후 선박으로 분류한다.
스텔라데이지가 왜 갑자기 침몰했는지 아직 구체적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기사들은 선박 노후화와 무리한 개조에 따른 선체 피로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침몰 사고 이후 스텔라데이지와 같은 선종으로 분류되는 ‘스텔라유니콘’, ‘스텔라퀸’, ‘솔라엠버’ 등에서도 선체 균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폴라리스쉬핑 기피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해기사들은 배를 타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어느 정도의 위험성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노후 선박을 타야 할 때마다 걱정되기 때문에 폴라리스쉬핑에 가기 꺼려진다고 털어놨다.
원양상선 선장 A씨는 “노후화된 광석운반선에서 자꾸 사고가 나니깐 같은 종류의 선박에 타고 싶지 않아 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선박은 해기사들에게 직장이자 집인데, 휴식공간마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돈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피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진해운 출신 항해사 B씨는 “노후 선박을 타고 싶지 않더라도 일을 해야 하니 탈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이번 사고가 남일 같지 않다”고 했다. 스텔라데이지 승선 해기사 중에는 한진해운 파산 이후 폴라리스쉬핑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도 있다.
해기사들은 승선할 때마다 회사에서 정해주는 선박을 타는데, 노후 선박이라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조선이 많은 대형 선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노후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만, 한진해운이 사라지면서 그마저 갈 수 있는 선사도 줄었다. 폴라리스쉬핑 소속 해기사들은 불안감 속에서 선박을 운항하고 있다. 사고 이후 좀 더 꼼꼼하게 선박을 점검하고 있다고 하지만, 해기사 본인 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들의 걱정이 크다.
김두영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은 “선원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관심을 가지고 적극 대응하고 있다”며 “노조협의회 차원에서 폴라리스쉬핑에 노후 선박 현황이나 향후 대처 방안을 공식 요구했지만, 답변은 아직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폴라리스쉬핑 관계자는 “전체 선박을 대상으로 한국선급, 로이스선급과 공동으로 검사관을 파견해 특별 선체검사를 별도로 진행하고 출항시키고 있다”며 “사고 이전부터 회사가 보유한 노후 선박을 모두 신조선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곧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