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기능 대폭 강화해 대기업 내부거래 집중 조사할 듯
대주주 권한 줄이는 상법 개정안 재추진…재계와 마찰 예상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계는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후보시절부터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대기업 전담부서를 확대해 내부 거래 등 불공정 행위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지난 국회에서 재계 반발로 처리가 무산된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도를 다시 추진할 예정이어서 마찰이 예상된다.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를 단계적으로 해소하도록 하고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대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 권한 막강해진 ‘슈퍼 공정위’ 탄생하나
문 대통령은 ‘재벌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하고 문어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겠다’는 내용을 10대 공약 중 세 번째로 내걸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중소기업청 등 범정부 차원의 ‘을지로위원회’를 구성해 재벌의 이른바 갑질 횡포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강화하고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제도를 폐지해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행위로 피해를 본 자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고발할 수 있도록 하고 공정위의 대기업 전담부서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공정위의 조사권한은 확대하고 조사활동 방해에 대한 처벌은 강화할 방침이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슈퍼 공정위’가 탄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의 집중 조사 대상은 삼성, 현대차(005380), SK(034730), LG(003550)등 4대 그룹이나 CJ, 신세계까지 포함한 범4대 그룹이 될 전망이다. 30대 재벌의 자산총액에서 4대 재벌의 비중은 2015년 기준 51.6%에 달하고 CJ와 신세계까지 포함하면 65.2%다. 문 대통령 캠프에서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과거 공정위 조사국 조직처럼 (대기업) 조사 기능을 강화하고 기업 갑질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했었다.
재계는 공정위 권한이 강해지면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 측이 부활시키겠다고 한 공정위 조사국은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졌다가 기업들의 반발에 밀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에 폐지된 바 있다. 당시 공정위 조사국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약 3년 동안에만 총 29조2000억원의 지원성 거래를 적발해 295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한 내부 거래가 많이 줄었지만, 정권 초기에 조직이 새로 생기면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강도 높은 조사가 있지 않겠나”라며 “공정위 권한이 막강해지면 아무래도 기업 활동에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집중투표제 또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재추진
문 대통령은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고 건전한 경영문화를 만들기 위해 이사회의 감독 기능과 소수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상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가 특히 주목하는 상법 개정안 조항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와 집중투표제다.
현재 대기업 상장사들은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모두 선출한 다음 선임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따로 선임하고 있다.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되지만, 감사위원 후보들이 이미 대주주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사들로 채워진 상태여서 감사위원도 사실상 대주주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는 감사위원을 처음부터 분리해서 뽑는 것으로 대주주가 감사위원 후보에 영향력을 거의 행사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이다. 집중투표제는 2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당 이사 수와 같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인데, 그동안 재계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와 집중투표제가 결합되면 외국계 투기자본이 이사회에 진출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어려워진다고 반발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의식해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를 동시에 도입하지 않고 둘 중 하나만 추진하기로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헤지펀드가 이사회에 참가하면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배당 확대 등 단기 이익만 요구할 가능성이 커 국내 고용이나 투자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주회사 요건이 강화되고 기존 순환출자를 단계적으로 해소하겠다는 공약도 삼성이나 현대차, 롯데와 같은 일부 대기업엔 부담이 될 전망이다. 현재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은 200%,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은 상장사 20%, 비상장사 40%인데 부채비율 기준을 낮추고 지분율 요건을 높이면 지주회사 전환이 더 어려워진다. 또 삼성은 현재 7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현대차는 4개, 롯데는 67개의 고리를 갖고 있는데 이를 해소하려면 수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