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장을 마치고 7일 귀국한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 부총리는 지난 5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일부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내용의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며 나름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유 부총리는 이번 3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중국 샤오제 재정부장(재무장관)을 만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경제 보복 문제를 풀어보려 했습니다. 앞서 샤오제 재정부장과의 면담이 두 번이나 불발됐기 때문에 이번 요코하마 회의에 대한 유 부총리의 기대는 컸습니다.

유 부총리는 지난 3월 17~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 측 대표인 샤오제 재정부장과의 양자 면담을 추진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는다"는 중국 측의 냉담한 반응으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기회는 지난달 미국에서 있었습니다. 유 부총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와 IMF·WB 춘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DC에 갔지만 이때도 중국은 시간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9일 대선을 앞둔 이번 일본 출장은 유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로서 참석하는 마지막 국제회의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절실했습니다. 당초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ADB(아시아개발은행) 총회에 앞서 3개국 재무장관 회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회의를 이틀 앞두고 갑자기 장관이 아닌 차관을 참석시키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한·중 재무장관 면담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유 부총리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 사건은 3개국 재무장관 회의 다음 날인 6일 벌어졌습니다. 중국이 샤오제 재정부장을 요코하마로 보내 일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우리만 쏙 뺀 채 대화를 했다는 겁니다.

기재부 내에서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선이 끝난 뒤 내각이 바뀌면 유 부총리도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데 중국이 굳이 '말년 병장'과 대화를 하려고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없는 혼란기이다 보니 우리나라 경제부총리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기 지도자가 선출되면 일사불란하게 정부 조직을 구성하고 대내외적으로 경제 강국의 이미지를 하루빨리 되찾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