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연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기관 투자자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뜻하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키워드) 시행 여부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 요인으로 꼽혔던 불투명한 지배 구조가 스튜어드십 코드와 맞물려 개선되면 증시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레벨업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에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착되면, 기관 투자자들은 돈을 맡긴 고객을 대신해서 기업을 감시하고 견제하게 된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북한 리스크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면서 "유력 대선 후보들이 공약에서 내세운 대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한다면 한국 증시는 한 단계 더 레벨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침없이 오르네 - 대선을 하루 앞둔 8일 한국거래소 직원들이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코스피 전광판 앞에서 기뻐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前) 거래일보다 51.52포인트(2.30%) 오른 2292.76로 마감했다.

증권사들은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해지면 코스피 지수가 3000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민연금 참여 여부가 핵심

한국은 지난해 12월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표하고 시행에 들어갔지만, 아직 참여한 기관이 없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성패(成敗)의 키를 쥐고 있다고 말한다. 자본시장의 맏형 격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면, 300여 국내 기관 투자자들도 뒤따라 가입할 것이란 얘기다. 국내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보유한 상장사 지분 보유 가치는 102조6000억원(작년 말 기준)에 달한다. 5% 이상 대량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총 285개사에 달한다.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단순한 투자자 역할만 고수하고 있어 '식물 대주주'라고 불렸다.

하지만 주요 대선 후보들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공약을 내걸면서 국민연금도 방향을 틀고 있다. 지난 2일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관련한 연구 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용역 기간은 5개월로, 오는 10월쯤 연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국민연금이 위탁 운용사를 선정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여부를 평가 항목으로 두면 대다수 기관은 모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다만 국내 기관 투자자들은 대기업이나 금융지주사 계열이 많아 이해 상충 소지가 큰데, 새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이런 문제를 잘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창원 노무라증권 전무는 "일본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GPIF가 지난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한 이후 일본 기업들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환원 정책이 확산됐고, 결과적으로 주가 상승에도 기여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듬해인 2015년 닛케이지수가 15년 만에 2만 선을 뚫었고,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30%를 넘어서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주 배당도 계속 늘어나 지난해 일본 기업들의 배당금 총액은 11조8000억엔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치권에 휘둘리면 '연금사회주의' 우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기관 투자자들의 반대 비율은 2.2%에 그쳐 매우 낮았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이 주주권 강화 등을 내세우고 있어 앞으로 시장 참여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에 기반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은 8일 국회에서 비상경제대책단 회의를 열고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 등을 담은 ‘자본시장 육성과 중산·서민층 재산 형성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용섭 비상경제대책단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실효성 있게 시행하는 등 자본시장 발전의 걸림돌을 근본적으로 제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대표는 “기업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세력이 생기면 오너의 배만 불리는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행태는 사라지게 될 테고, 이 과정에서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 기업의 배당 수익률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과도한 경영권 간섭으로 이어져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기업들이 배당을 더 많이 달라는 압박을 받으면 중장기 전략 추진을 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국민연금이 정치권의 압력에 휘둘려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하게 되면 연금사회주의로 귀결된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일본 연기금의 경우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고, 투자금 운용을 위임받은 위탁 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각자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엔 자체 운용역을 거느리고 절반 정도는 자체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게 되면 투자 기업과의 마찰을 촉발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 투자가들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 지침을 말한다. 서양의 큰 저택에서 집사(스튜어드)가 집안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것처럼, 기관 투자자도 고객 자산을 선량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다. 지난 2010년 영국이 처음 도입한 이후, 현재 12개국이 운용 중이다. 한국도 지난해 12월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표했지만, 자율사항이어서 아직 참여한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