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재테크 시장에서 소외됐던 중소형주 펀드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15년 하반기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던 중소형주들이 최근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면치 못하던 펀드들이 속속 되살아나고 있다.

중소형주 펀드는 시가총액 100위 이하인 중소형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이 상품들을 운용하는 여의도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선 "마음고생 많았는데, 이제야 좀 살 만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7일 펀드 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으로 중소형주 펀드의 최근 한 달 수익률은 4.3%를 기록하고 있다. 주식형 펀드 전체(2.4%), 코스피 지수(2.1%)보다 훨씬 높다. 수익률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시중 자금도 중소형주 펀드로 유입되고 있다. 올 들어 전체 주식형 펀드에선 매달 자금이 빠져나갔는데, 중소형주 펀드에는 지난달 약 300억원의 새 자금이 유입됐다. 최근 대형주 펀드로 수익을 올린 투자자 중 일부가 발 빠르게 중소형주 펀드로 옮겨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대선 주자들이 주요 공약으로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내수 중소기업,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들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히면서 중소형주를 향한 시장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집권 1~2년 차에 중소기업 부문에 각각 10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한 바 있다.

중소형주 펀드, 수익률 반전

중소형주 펀드들은 최근 2년간 맥을 못 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대형주 위주 장세가 펼쳐지면서 중소형주들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탓이다. 중소형주 펀드의 최근 2년 평균 수익률은 -12%로, 전체 주식형 펀드 수익률(-0.3%)보다 훨씬 부진했다.

하지만 올 들어 실적 개선 기대감에 힘입어 중소형주들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5일 575.12까지 추락했던 코스닥 지수가 5개월 만에 10% 넘게 오른 것도 동력이 되고 있다.

2007년 최초 설정 이후 중소형주 대표 펀드로 꼽히는 삼성중소형포커스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8.4%에 달한다. 펀드 순자산이 8800억원이 넘는 KB중소형주포커스펀드와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이끄는 메리츠코리아스몰캡펀드도 연초 이후 4%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이들 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이 각각 -5.7%, -3.8%. -13.2%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극적인 반전'인 셈이다.

9일 대선 이후 중소형주 펀드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도 많다. 대형주 강세장에 이어 지난해 큰 폭의 조정을 받았던 중소형주·내수주 위주로 주도주가 바뀔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민수아 삼성자산운용 밸류주식운용본부장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기업 이익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면서 중소형주의 수익률이 높아지는 국면"이라며 "대선 이후 IT(정보기술)·금융뿐만 아니라 실적 대비 저평가됐던 내수 소비재 업종의 수익률도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형주 투자 비중 늘려 정체성 모호해지기도

일각에선 중소형주 장세가 오더라도 일부 중소형주 펀드는 그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지난해 대형주 장세에서 삼성전자 등 대형주 비중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그간 "성장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삼성전자를 외면했던 존 리 대표도 올 들어 삼성전자를 펀드에 담았고, 대신성장중소형주펀드 등 삼성전자 편입 비중이 자산의 10%가 훌쩍 넘는 중소형주 펀드들도 속속 생겨났다. 이들 펀드는 삼성전자 주가가 한 주당 220만원을 넘어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은 덕에 최근 수익률이 다른 펀드보다 우수했다.

또 현대인베스트먼트중소형배당펀드, 맥쿼리뉴그로스펀드 등은 포트폴리오 내 대형주 비중이 40%를 훌쩍 넘는다. 대형주 비중이 30%를 넘으면 대형주 펀드로 분류하는 국민연금 기준에 따르면 이들 펀드는 중소형주 펀드가 아닌 셈이다. 이를 두고 "시장 상황에 맞는 유연한 운용 전략으로 수익률을 지켜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대형주 펀드와의 차별성이 사라지면서 향후 중소형주 반등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삼성전자 등 대형주가 오를 대로 올랐다고 판단해 중소형주 본연의 포트폴리오로 돌아가고 있는 중소형주 펀드가 늘고 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이르면 6월부터 중소형주 중에서도 '성장주'보다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매력이 높은 '가치주'가 떠오를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펀드 포트폴리오와 투자 설명서를 꼼꼼히 확인하고 상품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