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 재고 쌀 52만t을 가축 사료용으로 매각할 예정이다. 국민 825만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이 쌀은 3~4년 전 사들일 때 8119억원이나 들었는데, 이번에 사료로 판매할 가격은 1082억원밖에 안 된다. 정부가 손해를 감수하면서 사람이 먹을 양식을 동물에게 넘기는 것은 재고 쌀을 줄여 쌀값 폭락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이다.
이런 사태가 생긴 원인은 쌀 직불금에 의존해 농민들이 생산을 줄이지 않아 재고가 넘치고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안철수 후보 등 대선 후보들은 직불금 지출을 더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 공약이 실행되면 쌀 공급 과잉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다.
◇올해 쌀에 쓰는 예산만 3조2500억원
지난해 우리 국민의 쌀 평균 소비량은 61.9㎏이다. 하루 공깃밥 두 그릇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1980년(132㎏)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 해 쌀 생산량은 420만t에 달해 적정 쌀 생산량(연 390만t)을 크게 웃돌고 있다. 쌀 생산량이 줄지 않는 것은 직불금이 받쳐주니 농민들이 크게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엔 쌀 가격 하락 폭이 너무 커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 주는 몫(직불금)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작년 쌀값(80㎏당 12만9711원)은 20년 전인 1996년(13만6713원)보다도 낮다. 정부의 쌀 재고도 적정량(80만t)을 크게 초과해 올해 3월 기준으로 229만t에 달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쌀 200만t의 보관 비용만 연간 6320억원에 달한다고 계산한다. 올해는 2조3283억원의 직불금을 비롯해 공공 비축미 매입 비용, 재고 쌀 보관비 등을 합쳐 모두 3조2500억원대의 재정이 투입된다. 전체 농업 예산(14조7062억원)의 22.1%를 쌀 관련 사업에 쏟아붓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안철수·심상정 대선 후보가 내놓은 직불금 추가 지급 공약이 현실화되면 '과잉 생산→가격 하락→직불금 보전→과잉 생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수렁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쌀 목표 가격을 올리면 직불금 지급이 늘어나고, 생산도 증가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멀어진다"고 지적했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일본은 2018년산부터 쌀 직불금을 완전 폐지하고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농경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쌀 과잉 생산에 대한 해법으로 대선 후보들은 쌀농사를 짓던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주는 제도인 생산조정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역시 재정을 투입해야 하고,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할지도 미지수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다른 농민들이 동참하고 자신은 불참하면 이익을 볼 수 있는 제도라서 농민들이 안 따라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선심성 농어업 공약 많아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또 20~30대 청년 농업인에게 직불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똑같이 냈다. 젊은이들이 농사를 지으면 정부가 일정액의 직불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문·안 두 후보는 어민들에게 FTA(자유무역협정) 피해를 보전하는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는 수산직불금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 밖에 문 후보는 농어민이 100원만 내면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100원 택시' 제도를 공약했다.
대선 후보들은 이처럼 농어촌 선심성 공약을 대거 내놨는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문 후보는 "재정 투입 순위를 조정하고 기존 예산을 활용하겠다"고 했고, 안 후보는 "재정 및 조세 개혁을 통한 재원 활용"이라며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