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열린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공공 부문 일자리 공약이 논쟁거리로 부각됐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공무원 일자리 17만4000개, 병원·어린이집 등 국공립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 일자리 34만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청소부 등 비정규직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30만개 등 공공 부문에서 총 81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토론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이 공약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유 후보는 "공무원 수를 급격하게 증가시키는 것 아니냐. 소요 예산이 21조원이라고 하는데 계산해봤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우리 정책본부장과 토론하시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청년 실업 대책인지, 또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취업자 대비 공공 부문 일자리 비중이 7.6%(2013년 기준)로 OECD 평균(21.3%)보다 훨씬 낮은 데다 재정 상태도 건실한 편이라 공공 부문에 일자리를 늘릴 여력은 있다.
그러나 공무원을 17만명 이상 늘리는 데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데다 공공 부문이 비대해지면 민간의 활력을 떨어뜨려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또 선진국들이 공공 부문 인력을 줄이는 추세와 역행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세금을 많이 걷지 않기 때문에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 측은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공약을 위해 5년간 21조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재원 마련 대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문 후보 측은 "다른 지출을 줄이는 세출 구조 조정을 통해 공공 부문 일자리 예산을 마련하겠다"고만 설명한다. 하지만 세출 구조 조정에 의한 새 재원 확보는 박근혜 정부 때도 시도됐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법률에 의거해 정부가 임의대로 줄일 수 없는 의무 지출이 전체 예산의 51%에 달하고 정부가 조절 가능한 재량 지출 예산도 빡빡하게 운영되기 때문에 21조원을 따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또 인공지능(AI) 등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느냐는 좀 더 근본적인 반론도 나오고 있다. 조장옥 서강대 교수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규제를 풀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며 "공공 부문 일자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로 하는 직종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유럽 선진국들은 공공 부문이 너무 비대해 재정 적자 요인이 된다고 보고 저마다 공공 분야 일자리 감축에 나서고 있는 추세다. 영국의 경우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해 2010년 약 9만명의 공무원을 줄였다. 또 일본은 공공 부문 일자리를 더 늘리지 않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7.9%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 안전망 관련 공공 서비스 수요가 늘고 있음에도 공공 부문 일자리 비중이 낮게 유지되는 이유는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공공 부문 몸집을 계속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선진국에서 새로 들어서는 정부들은 공공 부문 감축을 공언하고 있다. 프랑스의 새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는 "공무원 수를 12만명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연방 공무원 수를 대폭 줄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무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단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세금으로 공무원을 늘린다는 발상은 재정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