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출범하는 새 정부는 역대 정부의 어떤 경제 정책을 계승해야 할까.

본지가 전국 주요 대학의 상경(商經) 계열 교수와 연구소 연구위원 등 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시장 자율성을 강화한 정책이 계승해야 하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꼽혔다. 김대중 정부의 규제단두대(규제총량의 50%를 감축하자는 정책·88%),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체결(87%),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법인세율 인하 등 기업친화정책·72%),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장관회의(규제신문고 설치 등·90%) 등이다〈그래픽 참조〉. 이번 조사는 전문가들이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등 지난 20년 동안 정부별 주요 정책 8~9개에 대해 계승해야 할 정책과 피해야 할 정책을 직접 선택하게 했다.

차기 정부가 계승해야 할 정책은?

전문가들은 대선과 관련,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어김없이 정책도 뒤집어지는 '새 정부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제전문가 4명 중 3명(76%)은 "우리 정부의 정책일관성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독일의 꾸준한 노동개혁을 이끌었던 슈뢰더 전 총리와 메르켈 총리의 15년 정책 일관성을 한국 경제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며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어김없이 정책도 뒤집어지는 '새 정부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혁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이전 정권의 정책들을 과거 유산의 폐기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은 정책일관성 관점에서 계승해 새 정부의 비전에 맞춰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개혁(97%)', 김대중 정부 '생산적 복지'(91%), 노무현 정부 '국가비전 2030'(84%)을 대표적인 좋은 정책으로 꼽았다.

또 성장 인프라 조성 정책도 다시 챙겨봐야 한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의 닷컴정책(벤처특별법, 스톡옵션제 등·83%),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온실가스 감축, 녹색기술 신성장동력산업 선정·80%) 등을 계승정책으로 들었다. 조선, 해운 등 일부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구조조정과 산업재편의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먹거리 선점에 대한 절실함이 투영됐다는 분석이다.

정인교 인하대 부총장은 "중장기 정책은 시대적 사조와 부합하고 미래의 패러다임 변화에 선대응하자는 취지로 고안된 것인데 이는 특정 정권 내에서 완수될 성격의 과제가 아니다"며 "정책 실효성이 가시화되기도 전에 정책을 단절시키는 것은 이미 투입된 헤아릴 수 없는 재원과 지식들을 사장시켜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정부가 단절해야 할 정책은?

"차기 정부가 이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학계의 조언도 이어졌다. 우선 정부의 자의적 시장 개입, 즉 국가 주도 경제운영 방식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의 대기업 빅딜(88%),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87%), 박근혜 정부의 무역투자진흥회의(79%) 등이 대표적으로 '계승하지 말아야 할 정책'으로 꼽혔다.

중장기적 정책 실효성을 고민하기보다 민심 사로잡기용으로 고안된 '구호성 정책'도 멈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성장률 7%, 1인당 소득 4만달러, 선진 7개국 진입·94%), 박근혜 정부의 4·7·4 정책(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81%) 등도 전형적인 구호성 정책으로 꼽혔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 주도로 경제를 운용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정부는 시장의 질서를 세우고 나머지는 시장 원리와 민간 창의에 맡겨야만 경제성장이 가능한 시대"라며 "정부 정책은 단기적 성과보다 중·장기적 실효성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