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삼성그룹 외신홍보팀과 해외 투자 부서엔 외국 기자, 투자자로부터 전화·이메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관련 문의가 잇따랐다. 특히 이 부회장이 포승줄에 묶여 특검에 소환되는 사진이 실린 신문을 본 한 외국 투자자는 '뇌물 기업에 투자한 돈은 회수해야 하는 규정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까지 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 구속 뉴스가 외신에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삼성이 마치 범죄 기업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의 기업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이 부회장이 구속되고 관련 뉴스가 외신에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삼성 브랜드 가치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해리스 폴(Harris Poll)'이 미국 소비자 2만3000명을 대상으로 기업 평판 지수를 조사한 결과 삼성은 지난해 7위에서 올해는 49위로 42계단이나 급락했다. '해리스 폴'은 미국과 영국 여론조사위원회 멤버로 활동할 만큼 공신력 있는 조사 기관으로 2000년부터 매년 미국 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기업의 비전과 리더십, 호감도, 제품·서비스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기업에 대한 평판을 조사하고 있다.

삼성은 이 조사에서 2012년 처음으로 13위에 이름을 올린 후 2015년엔 3위까지 수직 상승했다. 지난해 7위로 주춤했다가 올해는 49위까지 추락한 것이다. 해리스 폴의 조사 기간(지난해 11월 29일~12월 16일)을 고려하면 '갤럭시노트7' 발화 사고와 '최순실 게이트' 관련 삼성에 대한 검찰 수사, 국회 청문회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리스 폴'은 기업 평판에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의도적인 불법행위 또는 기업 지도자의 불법행위'를 꼽았다. 이 때문에 작년 12월 6일 국회 청문회 당시 AP통신이 '삼성 후계자에겐 최악의 날'이라고 보도하는 등 외신의 부정적 보도가 잇따른 것이 영향을 줘 삼성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준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청문회에 서고 구속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삼성은 외국에서 범죄 기업으로 낙인찍혔다"고 말했다.

삼성은 그동안 스포츠 마케팅 등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해왔다.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지난 20년 동안 '올림픽 마케팅'에 쏟아부은 돈만 2조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진 산업정책연구원 브랜드·디자인팀장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외국에서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 전체 이미지가 악화되고 있다"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추락하는 동안 일본 기업의 이미지는 급상승했다. '해리스 폴' 조사에서 지난해 63위였던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16위까지 올랐다. 작년 100위 내 일본 기업은 2개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5개에 달했다. 최근 '삼성의 위기는 일본 기업에 절호의 만회 기회'라는 일본 내 분위기가 이번 조사에서 결과로 확인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삼성 관련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면서 해외에서 삼성 이미지 추락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삼성 스캔들'이라는 별도의 코너를 만들어 최순실 게이트 관련 삼성 뉴스를 속보로 전하고 있다. 세계적 신용 평가 기관인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도 20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수사가 길어질 경우 삼성전자의 평판과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의 고민은 이미지 추락을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작년 말부터 정상적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당장 새로운 마케팅 계획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해 '갤럭시노트7' 발화로 실추된 이미지를 갤럭시S8로 만회해야 하는 시점에서 예상치 못한 악재가 터진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브랜드 이미지 추락이 실적 악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